비교적 밝은 모습으로 회견장에 나타난 이9단은 그러나 마이크 앞에 앉자마자 목소리가 떨려 편치 않은 속내를 엿보게 했다.
“먼저 그 동안 저를 아껴주신 팬 여러분과 후원사 관계자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이9단의 사과표명으로 시작된 이날 기자 회견은 곧바로 기자들의 질문과 이9단의 답변 형식으로 진행됐다.
- 휴직 사유에 대해
“여러 이유가 있다. 결정적인 것은 아무래도 프로 기사회에 (내 신변이) 안건으로 올라간 것으로, 그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확하게 사안이 밝혀진 것도 없고, 내 의견을 들어본 것도 아니다. 이해하기 쉽지 않다.”
- 한국바둑리그는 불참하고 중국바둑리그에는 출전했다?
“지금 상태로는 한국에서 바둑을 둘 수 없다. 중국 바둑리그 참가는 그나마 중국에선 안정적으로 둘 수 있기 때문이다. 목표도 있다. 소속팀인 구이저우(貴州)팀을 꼭 우승시켜 보고 싶다. 13억 중국인에게 한국 바둑의 우수성을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인 이유도 있다. 중국리그는 제한시간이 2시간 40분가량으로 국제대회와 비슷하다. 대국상대도 각 팀 주장들이다. 중국기사들의 스타일이나 힘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반면 한국리그는 속기전인 데다 대국상대도 오더제라 약체와 둘 때가 많다. 내 미숙한 부분을 보강하는 데는 중국리그가 낫다고 판단했다. 마지막으로 내 자신의 가치를 좀 더 인정해 주는 곳에서 두고 싶다는 생각이다.”
- 바둑판 사인 거부에 대해
“부채나 종이에 하는 사인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사인을 한다. 하지만 바둑판 사인은 좀 더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행사 관계자분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다는 점은 안다. 하지만 조금만 제 입장을 이해해 주고, 조금만 더 신중하게 부탁해 주셨으면 한다.”
- 시상식 불참에 대해
“지금까지 두 차례 불참했다. 한 번은 몸살로 몸이 너무 안 좋았다. 미리 연락을 못 드린 것은 내가 부족했다. 2005 한국바둑리그 시상식에도 불참을 한 일이 있다. 시상식이 1월 10일로 기억한다. 8일에 일본에서 국제대회 결승전을 두고 9일 귀국했다. 긴장이 풀려 부끄럽지만 늦잠을 자고 말았다. 팀과 후원사께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 당시 입장을 제대로 밝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 한국바둑리그 불참 통보를 한국기원에 뒤늦게 한 데 대해
“분명히 한 달 전에 한국기원에 전화로 통보했다. 하지만 이후 한국기원은 내게 한 번도 연락을 준 일이 없다. 불참통보 마감시간을 몇 시간 어긴 것은 맞다. 하지만 통지서가 너무 늦게 왔다. 통상적으로 1주일 전에 와야 할 통지서가 마감 4일 전에 도착했고, 설상가상 한국기원 휴일인 토요일이었다. 불참을 알릴 시간은 월요일뿐이었는데, 개인적인 일이 있어 몇 시간 늦게 된 것이다.”
- 휴직이 기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대해
“한시적으로 감각이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 한 두 달이면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쉬는 동안 바둑 외에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고, 마음을 안정시키다 보면 복귀해서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한 단계 올라갈 계기가 될 수 있다.”
이9단은 휴직 기간에 대해서는 “기간은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심경이 (바둑계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 정도가 된다면 얼마든지 돌아올 수 있다. 6개월 아니 석 달 뒤라도 올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휴직은 2년, 3년이 갈 수도 있다”고 했다.
이9단은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성숙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그런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면, (그때) 돌아오겠다”라는 말로 기자회견을 마쳤다.
한편 한국기원은 이날 이9단의 기자회견과는 관계없이 예정대로 7월 2일 이사회를 열어 이9단에 대한 징계 및 중국 바둑리그 참가 허용 여부를 최종 확정한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사진제공|사이버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