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 어느 신문에 난 기사 한 줄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비롯해 여러 베스트셀러 작품들을 쓴 소설가 공지영 씨(사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기사는 광주의 모 사립 청각장애인학교에서 벌어졌던 성폭력 사건의 마지막 선고 공판을 스케치한 것이었고, 공 씨는 이 실화를 바탕으로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에 일일 연재됐던 ‘도가니’(창비)다. 연재 누적 조회수가 1100만 건에 이르는 이 작품은 초판만 10만 부를 찍은 하반기 기대작이다.
단행본 출간을 맞아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을 만난 공 씨는 “낙후된 한 지역에서 일어나는 야만적 폭력과 그것을 눈감아주는 지배계층들의 교묘한 결탁, 침묵의 카르텔을 고딕적인 분위기로 다뤄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설은 남쪽 도시 무진(霧津)시에 있는 청각장애인학교 ‘자애학교’의 한 학생이 기차에 치여 죽는 의문사와 함께 시작된다. 이 학교에 주인공 강인호가 아내의 주선으로 기간제 교사 자리를 얻어 내려온다. 부임 첫날부터 여학생 화장실에서 비명소리를 듣게 된 그는 이 학교에서 일어나는 무자비한 폭력과 성폭행 등이 학생들의 연이은 죽음과 연관돼 있단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려 하지만 교육청, 경찰서 등 학교와 결탁된 지역의 기득권 세력들이 갖은 방법으로 이를 무마하려 들면서 힘겨운 싸움이 시작된다. 불의와 무자비한 악에 맞서 진실을 밝히기 위한 이들의 사투가 생생하고 속도감 있게 묘사됐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도시 ‘무진’은 김승옥 작가의 단편 ‘무진기행’에서 따왔으며 작품의 도입, 결말 부분은 이 작품에 대한 오마주 형식으로 구성했다. 작가는 작품을 위해 10여 차례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이 과정을 통해 그는 “감시와 견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모든 권력은 필히 부패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이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운동’은 사회와 법제의 어두운 면을 알고 주시하고 있다는 점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