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로 들여다본 당대의 문화
이 책은 중국, 인도, 페르시아, 그리스의 고고학 유적뿐 아니라 서아시아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의 고대 유적,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와 중앙아메리카의 고대 유적까지 안내한다.
라트비아공화국 출신으로 고대 문명에 관한 여러 저서를 펴낸 저자(1919∼1967)는 유적에서 발견된 고고 유물을 파편적으로 소개하지 않는다. 그가 주목한 것은 유물 뒤에 숨은 고대의 문화다. ‘유물이 당대에 어떤 역사적 맥락에 놓여 있었을까’가 관심사다.
저자에게 유물은 박물관에 보관되는 예술품이 아니다. 유물이 어떻게 제작돼 어떻게 사용됐는지, 어떤 문화의 일부였는지 추적해 간다. 원제 ‘위대한 문화권의 수수께끼(Der R¨atsel der großen Kulturen)’가 이 책의 주제를 잘 반영한다.
요르단에 있는 예리코 유적은 가장 오래된 도시다. 역사를 쓰기 시작한 시대보다 더 오래전인 기원전 1만 년∼기원전 7500년의 석기시대에 이 도시를 건설했다. 원시인이 과일을 채집하고 사냥을 하며 살아갔을 것 같은 시대에 도시가 있었던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 시대에 인간은 토기를 만드는 방법을 몰랐으면서도 높이 15m의 건물은 지었다. 지름이 9m인 탑도 나왔고, 도시는 6m 높이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예리코의 구석기인들은 동굴이 아니라 번듯한 집에 살았다. 반원 모양의 바닥은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었고 갈대로 만든 일종의 양탄자를 깐 흔적도 나왔다. 예리코인들이 어떻게 도시를 건설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학자들은 예리코에서 발견된 남자, 여자, 아이를 형상화한 석회 동상에 열광했다. 그들은 이 동상을 성가족(聖家族·기독교 가족의 모범으로서 성모 마리아, 요셉, 예수로 구성된 가족) 형태 중 맨 먼저 등장한 형상으로 본다. 이를 통해 문자가 없던 수천 년 전에 예리코인들이 가족에 대해 어떤 관념을 갖고 있었는지 추정할 수 있다.
집의 바닥 아래에서 발견된 해골은 그들의 조상 숭배 문화를 짐작하게 한다. 해골 표면에 황토를 발라 살아 있을 때의 표정을 재현하려 했다. 눈이 있던 자리에는 조개껍데기를 끼워 넣었는데 고인의 영생을 기원했을 것이다.
예리코는 수천 년 전 폐허가 됐지만 그곳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도시의 폐허 위에 지층이 쌓이고 새 도시가 세워졌다. 기원전 5000년 전. 이제는 토기를 사용하는 시대의 도시다. 이곳의 집에서는 예리코와 달리 정사각형의 방들이 발견된다.
이처럼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 밑에 어떤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는지를 알아내는 게 고고학의 신비다. 저자는 “당신이 살고 있는 실제의 시간에서 (당신은) 5m 높이의 예리코 성벽 위에 있을 수도 있고 가장 오래된 피라미드보다 4000년 더 오래된 지구상의 첫 번째 탑 위에 있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현재의 우리보다 훨씬 먼저 지구에 왔다간 사람들과 문화들의 수수께끼가 가득한 유적의 세계로 안내한다. 옛 사람들의 창조물과 예술품, 믿음이 현재와 단절된 과거가 아님을 느낄 수 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