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주인공은 병자호란이 끝난 뒤 윤집과 함께 청으로 끌려가 처형돼 훗날 홍익한과 더불어 삼학사로 불리게 되는 오달제였다. 오달제 역으로 주말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에서 둘째 대풍 역으로 출연하는 이필모 씨와 뮤지컬 배우 김수용 씨가 나란히 발탁됐다. 당시 소장파 척화론자였던 오달제는 소설의 말미에 윤집과 더불어 3쪽 분량으로만 등장한다.
여자주인공은 그런 오달제를 사랑하는 기생 매향(배해선 씨)과 아내 남씨 부인(임강희 씨)이다. 소설에서 매향은 언급조차 안 됐고 남씨 부인은 이름도 없이 ‘임신한 처’로만 소개될 뿐이다. 오달제의 대척점에 선 반(反)영웅으로 조선인 출신으로 청의 앞잡이가 된 정명수가 선택됐다. 가수 출신 뮤지컬 배우 이정열 씨와 그룹 슈퍼주니어의 일원인 예성이 번갈아 맡을 정명수는 오달제가 쏜 총에 맞아 부상을 입는 것으로 설정됐다. 종5품 홍문관 부교리로 대표적 ‘책상물림’인 오달제가 조선 최고의 명사수로 둔갑하는 셈이다.
반면 소설 ‘남한산성’에서 가장 비중 있게 등장하는 김상헌과 최명길의 역할은 대폭 줄었다. 그나마 강을 건너게 해 준 사공이 적의 길안내를 맡을까 봐 칼로 베는 깜짝 액션을 펼칠 김상헌 역에 손광업 씨가 발탁됐지만 최명길의 배역은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연출가 조광화 씨는 “뮤지컬 관객 대다수를 차지하는 젊은 층을 겨냥한 사랑 이야기를 담기 위해 고심 끝에 오달제를 골랐다”고 말했다. 오달제의 당시 나이는 27세이다. 조 씨는 “당파싸움같이 비치는 게 싫어 김상헌과 최명길의 대립은 최소화하겠다”며 “뮤지컬은 서양에서 기원한 장르이므로 서양문법에 맞춰 모던해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화답하듯 미술감독 정승호 씨는 “전통 스타일이 아닌 모던한 스타일로 승부를 걸겠다”고 말했고, 음악감독 최재광 씨는 “사극은 꼭 국악 베이스의 음악을 써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현대적 비트와 리듬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궁금했다. 사극 문법에 대한 그런 도전정신이 서양식 뮤지컬 문법 앞에선 왜 꼬리를 감추는 것일까. 의아했다. 원작과 무관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둔갑시키면서 굳이 김훈 소설을 원작으로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답답했다. 드라마건 뮤지컬이건 왜 우리 사극은 뇌리를 파고드는 언어의 대결은 애써 외면하면서 자극적인 무협의 문법엔 그토록 충실한지.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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