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농기구-민화 등 특화
특정분야 전문영역 구축도
자수(刺繡)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한 정영양 박사를 기념해 2004년 문을 연 숙명여대 정영양자수박물관은 자수 및 섬유 유물과 예술품으로 특화된 곳이다. 이 박물관에서 6월 5일 시작한 미국의 섬유예술가 존 리스 특별전은 지금까지 1000여 명이 관람했다. 대학박물관 특별전의 경우 한 달 관람객 1000여 명은 적지 않은 숫자. 자수 섬유를 테마로 차별화한 전시를 5년 동안 진행해 오면서 고정 관람객이 많이 생긴 덕분이다.
대구대 박물관은 6월 초 박물관에 있던 유물 중 일부를 들고 시각장애인 특수학교인 대구광명학교를 방문했다. 작년에 시작한 ‘찾아가는 대학 박물관’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학생들은 비파형 동검, 도자기, 청동거울 등 유물의 실물과 모형을 직접 만지며 생생한 역사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최근 대학 박물관이 지역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역 특성에 맞는 콘셉트로 유물을 전시해 지역 역사 체험장으로 꾸미거나 유적 답사, 교양강좌 등 지역민 대상 프로그램을 수시로 열고 있다. 한양대 박물관의 배원정 학예연구사는 “대학 부속기관 정도로 여겨지던 대학 박물관이 지역 및 분야별 특화를 하고 있으며, 일반인 참여 프로그램을 개발해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대 박물관은 의병(義兵)사료관실을 별도로 마련해 조선시대 말 강원 지역에서 활동했던 의병장인 유인석 유홍석 윤희순 등의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경북대 박물관은 경주 황오동 34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을 비롯해 가야 토기, 신라 토우 등 신라와 가야 유물을 다수 전시한다. 공주대 박물관은 충남의 백제문화 유물을 중심으로 전시실을 꾸몄고, 수원대는 경기 연천군 전곡리에서 채집된 구석기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대학 박물관들이 추구하는 또 한 가지 특징은 숙명여대 자수박물관처럼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구축하는 것이다. 한양대 박물관은 ‘모던코리아 70’전을 8월 31일까지 열고 있다. 한국 최초의 아날로그 컴퓨터, 1963년에 제조한 라면, 1회용 면도기 등 지난 70년간 한국인의 생활에 혁신을 가져온 물건들을 통해 한국의 근대화를 조명하는 전시다. 한양대는 이전에도 ‘플라스틱 101’전, ‘이동통신 문화전: 호모 모바일런스’전 등을 열어 공업사(史) 전시에 독보적 영역을 구축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경기대 수원캠퍼스에 있는 경기대 박물관은 전국에서 수집한 농기구와 민속품을 전시하는 농경민속전시실과 전국 최대 규모의 민화를 수집 전시하는 민화전시실을 별도로 두고 있다.
대중과의 소통도 대학 박물관들의 화두다. 교양강좌로는 서울대 박물관의 ‘수요 교양강좌’가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올해 15년째인 이 강좌는 매 학기 다른 주제로 10회 이상 강의를 진행한다. 진준현 학예연구관은 “200석 규모의 강의실이 부족해 보조석을 놓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대학 박물관들은 실내에서의 전시 강의에 그치지 않고 지역민을 대상으로 하는 유적 답사 프로그램도 마련하고 있다. 한양대는 24일부터 1박 2일 동안 강원 원주시 치악산 고판화박물관, 단종의 유배지인 강원 영월군 청령포 등을 둘러보는 답사를 실시한다.
더 나아가 문화관광해설사를 양성하는 곳도 있다. 울산대 박물관은 3, 4월 울산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문화관광해설사 교육 과정을 열고 반구대 암각화, 울산의 불교유적 및 근현대사 등을 가르쳤다. 고려대 박물관은 2007년 개설한 ‘문화예술 최고위과정’을 통해 사회 유력 인사들에게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다. 2008년 상반기(1기)와 하반기(2기)에는 이명박 대통령 내외와 오세훈 서울시장 내외가 등록해 화제를 모았다.
숙명여대 박물관 홍경아 학예사는 “박물관의 존재 여부가 대학 평가의 기준이 되면서 구색 갖추기로 대학 박물관이 생겨난 1980년대 이전과 달리 이제는 볼 만한 전시와 교육을 제공하지 못하면 관람객이 오지 않고 관람객이 없으면 죽는 시대가 됐다”며 “대학 박물관들이 연계해 함께 전시나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