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3kg부터 142kg까지. 텔레비전 리얼리티 프로그램 ‘다이어트의 여왕’ 출연자 14명은 모두 체질량지수 35(정상지수 20∼24)가 넘는 ‘초고도 비만’이다. 걸어 다니는 무기 취급을 받던 이들은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100일간의 서바이벌 게임에 돌입한다.
“이름에 어울리는 몸을 갖고 싶었다”고 말하는 최단비, 운동할 때도 절대 하이힐을 벗지 않는 송준희, 아버지의 비디오방을 홀로 지키다 외로움에 사무쳐 음식에 의지한 미혼모 박순옥….
몸매 때문에, 다이어트 때문에 괴로워하는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주인공 정연두는 그런 상처가 없다. 실연의 충격 때문에 프로그램 출연을 결심했지만 요리사인 연두는 오히려 자신의 몸매는 직업병일 뿐이며 다이어트는 직업윤리를 배반하는 것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여자였다. 다이어트가 필요 없던 요리사의 세계에서 다이어트가 모든 것인 ‘다이어트의 여왕’ 속으로 들어온 연두는 어떻게 변할까.
“우리 사회가 몸을 바라보는 시선, 내 몸을 스스로 끊임없이 평가하고 부정하도록 하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장편소설 ‘다이어트의 여왕’의 작가 백영옥 씨는 “대학입학 첫해 방학이면 모든 여자들이 집단적으로 다이어트에 돌입하는 이 나라에서 다이어트는 한번 지나면 잊혀지는 유행이 아니라 평생 짊어지는 짐”이라며 “사회 병리현상으로서의 다이어트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는 ‘작은 사회’를 배경으로 택한 것도, 다이어트에 관심이 없던 연두가 다이어트에 집착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억지로 약을 먹고 토하고, 남의 약점을 카메라 앞에서 폭로하는 등 온갖 암투와 억측이 난무하는 ‘다이어트의 여왕’에서 연두는 살아남아 우승한다. 하지만 반쪽짜리 우승이다. 우승자 최단비가 실은 트랜스젠더, 즉 남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준우승자인 연두가 대신 여왕의 타이틀을 얻은 것. 누가 비밀을 폭로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나는 간을 보지 못했다. 아니, 간을 보지 않았다. 미세하게 돋아 있는 오른쪽 혀돌기는 더 이상 음식의 디테일들을 거부했고, 천천히 굳어가고 있었다.”
연두는 일하던 레스토랑으로 돌아온 뒤 자신이 음식의 맛을 느낄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미각을 잃은 연두는 손님 테이블에 나갔던 접시가 되돌아오는 수모를 겪다 결국 해고된다. 요리사의 자부심이 사라진 그녀에게 남은 건 몸매에 대한 집착뿐. 거식증에 걸린 연두의 체중은 “2008년 10월의 코스피지수처럼” 하강곡선을 그린다. 85kg에서 41kg까지 몸이 절반 이상 줄어드는 동안 연두의 영혼도 그만큼 피폐해졌다.
‘다이어트의 여왕’은 2008년 12월부터 올해 6월까지 인터넷서점 ‘예스24’에서 연재한 소설이다. 하지만 마지막 11부는 연재 당시에는 공개하지 않았다. 백 씨는 “연재하는 동안 연두에게 감정이입을 하던 독자들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았다”며 “11부에는 우리가 사는 이 현실이 얼마나 가혹한지, 상처를 극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담았다”고 말했다. 연두는 과연 거식증을 극복할 수 있을까. 다이어트는 그녀의 삶을 어떻게 재구성했을까. 풀리지 않는 의문을 안은 채 이야기는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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