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수많은 인물등장 우리자신의 허상… ‘그 놈이 그 놈’

  • 입력 2009년 7월 16일 02시 57분


6명의 배우가 19명의 인물을 연기한다. 모텔로 설정된 무대세트 3개의 기둥 뒤로 사라진 인물이 순식간에 다른 인물로 바뀌어 엉뚱한 곳에서 등장한다. 눈썰미 없는 관객은 극이 시작되고 한참 동안 누가 누구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다. 명품 신체극의 산실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풍자음악극 ‘그 놈이 그 놈’(작·작곡·연출 임도완)의 묘미다.

모텔에 숨어든 강도와 그의 애인, 그로부터 정기적 상납을 받은 경찰서장과 그가 흘린 정보를 물고 들이닥친 형사, 모텔을 운영하는 삼대의 다섯 가족, 밀애를 나누는 국회의원과 여배우, 그들을 경쟁적으로 쫓는 파파라치, 돈으로 이를 무마하려는 ‘왕언니’….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대표작 ‘휴먼 코미디’의 세 번째 에피소드 ‘추적’의 내용을 음악극으로 확장한 이 작품에서 얽히고설킨 복잡한 인간관계는 부차적일 뿐이다. 수많은 인물 군상은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반영한 허상이다.

작품의 제목은 강도나 형사나, 정치인이나 기자나, 연예인이나 일반인이나 모두 똑같은 허영과 허위에 젖어 살아가는 현실을 풍자한다. 극 후반부에 최소 1인 3역을 소화하는 배우들이 일부러 의상이나 대사, 행동의 불일치를 보이거나 치매증상의 할머니가 여러 배역을 소화하는 동일 배우의 정체를 꿰뚫어 보는 것 등은 이를 겨냥한 극적 장치다.

문제는 이런 성찰적 내용과 동떨어진 주제의식의 과잉에서 발생한다. 연극의 내용은 모든 사람을 동질화시키는 사회의 구조적 메커니즘을 풍자하고 있는데 정작 배우들이 부르는 노래는 사회지도층에 대한 비난 일색이다.

“어쩌면 모두 다 도둑놈일지도 몰라”라든가 “썩어빠진 세상 모두 양다리 걸치는 세상”과 같은 노래가사가 작품에 밀착되지 못하고 겉도는 이유다. 19일까지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 (02-764-7462).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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