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이야기 속에 산사의 일상 담았죠”

  • 입력 2009년 7월 16일 02시 57분


한시 해설집 펴낸 흥선 스님

“인문학의 위기라는 요즘, 사실 주위를 둘러보면 훌륭한 읽을거리가 많습니다. 한시(漢詩)도 그 중 하나입니다. 문기(文氣)를 전하는 데는 이만 한 게 없습니다. 하지만 한자의 어려움 때문에 한시에 접근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죠.”

경북 김천의 직지사 성보박물관장을 맡고 있는 흥선 스님(53·사진)이 한시 해설집 ‘맑은 바람 드는 집’을 최근 출간했다. 중국 북송 때 문인 소식, 당나라 시인 두보, 고려 말의 고승 나옹, 조선시대의 서거정과 김정희 등 한국과 중국 문인의 시 77수를 번역하고 시를 읽으며 느낀 소회를 함께 담았다. 수록된 시들은 박물관 홈페이지에 7년 반 동안 올린 170수 가운데 고른 것이다. 스님은 1974년 출가해 해인사 강원을 졸업했다. 이후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나와 직지사 강원에서 강주도 지냈다. 금석학과 문화재에도 조예가 깊으며 현재 경상북도 문화재위원을 맡고 있다.

14일 서울 종로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스님은 “조지훈, 박목월 시인은 한시를 좋아하신 분들이다. 그분들의 시는 한시의 영향으로 목가적이고 관조적인 느낌이 짙다”며 “한시와 우리말 모두를 잘 아는 문인들이 좋은 글을 많이 소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스님은 책에 수록한 한시 중 중국 청나라 옹조(翁照) 시인의 ‘매화오좌월(梅花塢坐月)’을 추천했다. 이 시의 제목은 매화가 핀 밝은 달밤을 의미한다. ‘밝은 달 아래 고요히 앉아(靜坐月明中)/나직이 시를 읊자 맑은 냉기 물결 일고(孤吟破淸冷)/시내 건너 늙은 학은 찾아와(隔溪老鶴來)/매화꽃 그림자를 밟아 부수네(踏碎梅花影).’ 스님은 “봄을 노래한 이 시에서 ‘그림자를 밟아 부수다’라는 표현은 한시의 매력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수록 작품을 고를 때 너무 어렵거나 유명한 시는 빼고 기본적인 소양만 있으면 이해할 수 있는 시를 골랐다. ‘대동강수하시진(大同江水何時盡)/별루연연첨록파(別淚年年添綠波).’ 즉 ‘대동강 물은 언제 마를까, 해마다 강물에 이별 눈물 더하네’라는 구절로 잘 알려진 정지상의 ‘송인(送人)’이 빠진 이유다.

스님은 77편의 시를 모두 펜으로 써서 옮기고 번역했다. 필체는 마치 펜글씨 교본을 연상시키며 한국 중국 일본의 전통 종이 77장을 사용했다. 이 종이들의 색깔과 무늬가 각각 다른 점도 흥미롭다. 스님은 “한시를 매개로 나의 소회를 이야기하고 계절 따라 변하는 산사의 자연과 분위기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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