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방송된 SBS ‘야심만만2’에는 그룹 ‘스윗소로우’의 멤버 인호진 성진환이 출연했다. 스윗소로우는 평소 예능프로그램에 자주 얼굴을 비치지 않는 만큼 이날 방송에는 팬들의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이날 두 멤버가 63분 동안 방송에서 한 말은 “연세대 남성합창단 출신으로 이뤄진 4명의 보컬그룹으로 그중 에이스 두 명이 나왔다”가 거의 전부였다. 그들은 다른 출연진의 이야기에 크게 웃어주는 모습이 주로 방영됐다. 히트곡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과 이승환 모창을 포함해 노래 3곡을 불렀지만 몇 소절에 그쳤다.
방송이 나간 뒤 시청자 게시판에는 항의가 이어졌다. ‘스윗소로우 나온다고 해서 기다렸다. 게스트가 나왔으면 조금이라도 방송 분량 분배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지상파 예능에서 자주 볼 수 없어 기대했던 스윗소로우 팬들의 마음은 생각해주지 않는 것인가.’
예능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나왔지만 통째로 편집돼 방송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 연예인들이 있다. 예능 담당 PD들에게서 ‘편집의 이유’를 들어봤다.
▽말없는 ‘침묵형’=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촬영 전 작가들이 출연진을 인터뷰해 대략적인 이야기 소재를 정한다. 상세한 대본이 없기 때문에 출연진의 맛깔 나는 입심에 따라 방송 분량을 정한다. 예능 담당 PD들은 “방송 분량이 적은 출연진은 대부분 촬영장에서 몇 마디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 방송에 내보내고 싶어도 내보낼 말이 없다는 것이다.
‘야심만만2’에 나온 스윗소로우 측도 “그날 나온 게스트들이 말을 잘해 치고 들어가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방송에는 고려대와 연세대 출신 연예인 7명이 출연했다. 여러 남학생에게 둘러싸여 학교를 다녔다는 한성주, 학창시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친구에겐 항상 공부 안 한다고 거짓말했다는 이인혜 등이 입담을 과시했다.
지난달 15일 방송된 MBC ‘놀러와’에는 옛 젝스키스 멤버인 장수원이 은지원의 단짝 친구로 출연했다. 이날 장수원의 방송 분량도 얼마 되지 않았다. 은지원은 장수원에게 방송 중 “왜 토크 프로그램 나와서 말을 안 해”라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 ‘놀러와’ 신정수 PD는 “만약 출연진이 6명 나왔다면 6분의 1 역할을 해줘야 어느 정도 방송 분량이 확보된다”며 “많이 못 나오는 출연진은 20분의 1밖에 이야기 못한 경우”라고 말했다.
▽안 웃기는 ‘썰렁형’=시청자에게 웃음을 주기 어려운 내용도 편집 1순위다. KBS ‘개그콘서트’에서는 코너마다 고정 개그맨이 나와 개그를 선보인다. 그런데 가끔 화면에 얼굴은 나오는데 말 한마디 못한 채 들어가는 개그맨도 있다. 5일 개그콘서트의 ‘봉숭아학당’에서 개그맨 송준근(곤잘레스)은 한마디도 못하고 무대 위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방송이 나간 날과 그 다음 날 시청자 게시판에는 ‘곤잘레스 왜 안 나오느냐’ ‘곤잘레스 보고 싶다’는 시청자 글 8개가 올라왔다.
개그콘서트 김석현 PD는 “녹화장에서 재미가 없거나, 다듬으면 훨씬 재미있어질 것 같은 개그는 편집한다”고 말했다. 개그콘서트에서 각 개그맨이 혼자 하는 대사는 2∼3분 분량. 제작진은 이 시간 동안 방청객의 웃음이 서너 번 터질 것으로 예상한다. 웃음이 터져야 할 지점에서 방청객 반응이 안 좋으면 편집한다.
5일 방송에서 곤잘레스가 편집된 이유는 총 방아쇠를 당기면 곤잘레스의 사진과 전화번호가 찍힌 종이가 나오면서 “곤잘레스 경호 서비스!”를 외쳐야 하는데 종이가 제때 안 나와 방청객을 웃기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 개그는 12일 다시 방송에 나왔고 이번에는 아슬아슬하게 제때 총에서 종이가 나왔다.
그렇지만 웃기는 얘기라도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 겹치기 출연해 이미 방송을 탄 이야기 △출연한 연예인들끼리만 알아듣고 웃을 수 있는 내용 △이야기의 진정성이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가위질을 한다.
▽욕설로 웃기려는 ‘비방형’=욕설, 성적 농담, 비방성 발언도 편집 대상이다. MBC ‘세바퀴’의 박현석 PD는 “촬영장 분위기를 띄우려고 출연진이 일부러 욕을 하거나 과격한 발언을 하는 경우 90%는 제작진이 편집한다”며 “나머지 10%는 상황에 따른다”고 말했다. 박 PD는 “본인이 말실수를 했다고 생각하는 출연진이 나중에 편집을 부탁하면 대부분 들어준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출연진이 방송에 부적합한 말을 했더라도 이에 대한 다른 출연진의 반응이 재밌으면 해당 발언을 ‘삐리리’ 등으로 처리해 방송하는 경우가 있다. 지난달 22일 ‘놀러와’에서는 유재석이 박명수에게 “형수님하고 헤어진다고 열 번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느냐”라는 폭탄 발언을 하자 박명수가 그 부분이 편집되도록 일부러 비속어를 섞어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박명수의 태도를 보고 배꼽 쥐며 웃는 다른 출연진의 반응이 재미있어 해당 발언만 ‘삐리리’로 처리한 채 1분 정도 방송했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