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울다가 웃으면’은 CF와 드라마가 흘러나오는 TV 모니터 앞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중년 여성의 뒷모습으로 시작해 파열음만 가득한 모니터 앞에서 잠든 그 뒷모습으로 끝난다. 어쩌면 그녀의 남편과 아이들에게 가장 익숙할지 모를 그 뒷모습이 너무 슬퍼 보이는 것은 왜일까. 수다를 떨 말동무조차 없어 오로지 ‘바보상자’를 벗 삼아 살아가는 슬픈 초상. 그것도 뒷모습으로만 기억되는.
연극은 그 TV 대신 영혼의 말벗을 찾아 나서라고 속삭인다. 여성들의 우정에 대한 두 가지 전혀 다른 에피소드를 펼치면서…. 전편은 대학생 시절 안톤 체호프의 ‘세자매’ 공연 연습을 위해 MT를 갔던 곳에 들어선 휴양콘도로 놀러 간 연극영화과 여자 동창 3명의 이야기다. 딸만 셋 둔 전업주부, 자식을 못 갖는 유명 영화감독의 아내, 학업을 위해 아들을 저버렸다는 이유로 이혼당한 연극영화과 교수. 마흔을 코앞에 둔 그들이 때론 박장대소를 터뜨리고 때론 펑펑 눈물을 쏟으며 토해놓는 사연은 TV 드라마를 빼닮았다.
고된 시집살이를 견디며 믿고 의지한 남편의 애정은 차갑게 식기 마련이고 금실 좋은 부부는 남편의 바람기를 모른 척해 온 아내의 희생 위에 세워진 모래탑일 뿐이다. 부성애는 권리지만 모성애는 의무이고 아줌마는 ‘이 세상 제일 밑바닥 계급’이자 ‘죄인’이다. 이 진부한 이야기들이 힘을 갖게 되는 것은 남자들 의리의 아이콘 ‘영웅본색’의 주윤발이 그들의 수다를 뚫고 솟아오르기 때문이다. 그녀들의 공동 우상이던 주윤발을 닮았던 남자 선배에 대한 로망은 그들을 연결시켜 주는 동굴이자 우정을 남성의 독점물로 바라보는 통념을 무너뜨리는 땅굴이다.
후편은 말기 암환자 병실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세 여자의 사연이다. 울다가 웃어도 그 어딘가에 난다는 털조차 자랄 수 없는 불모의 몸으로 생수를 소주 삼아 삶과 죽음의 의미를 묻는 그들에겐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라도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이 있기 마련이다. “남편이 뭘 알겠니”라는 그들의 대사는 이를 상징한다. 2007년 말 유방암 수술을 받은 체험을 토대로 작가·연출가·배우 1인 3역을 맡은 우현주 극단 맨씨어터 대표와 삼각편대를 구성한 정재은 정수영 두 배우의 연기 앙상블도 일품이다. 특히 막간에 세 배우가 돌아가며 부르는 이선희의 ‘알고 싶어요’와 자우림의 ‘봄날은 간다’, 어어부밴드의 ‘어른용 사탕’은 극중 캐릭터와 절묘하게 어울려 강한 여운을 남긴다. 8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동숭소극장. 02-2233-2784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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