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뿌리는 하나, 맛은 두 가지

  • 입력 2009년 7월 24일 03시 00분


오월엔… 스프링… 등 같은 원작 다른 공연들

같은 원작 다른 느낌으로 승부를 거는 공연이 늘고 있다. 이들 공연은 연극을 뮤지컬로 옮기거나 같은 뮤지컬 작품이라도 전혀 다른 해석으로 관객의 다양한 취향에 호소하고 있다. 이 작품들은 영화를 뮤지컬로 바꿔 무대에 올리는 뮤비컬을 닮았지만 뮤비컬과 달리 동시간적으로 공연이 이뤄진다는 특징을 지닌다.

연극 ‘오월엔 결혼할꺼야’와 뮤지컬 ‘웨딩 펀드’는 그 대표적 사례다. 8월 30일까지 서울 대학로 나온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오월엔…’은 2007년 젊은연극제에 출품된 작품을 공연기획사 나온컬쳐가 발굴해 세 번째로 무대화한 작품이다. 원작자 김효진은 창작뮤지컬계의 ‘무서운 아이들’로 떠오른 장유정(‘오! 당신이 잠든 사이’와 ‘김종욱 찾기’), 추민주(‘빨래’와 ‘젊음의 행진’)와 한국예술종합학교 00학번 동기다.

스물아홉 여고동창생 셋이 첫 번째 결혼하는 사람에게 몰아주기로 하고 매달 10만 원씩 10년간 부은 결혼적금 3825만 원을 놓고 웃음과 눈물의 쟁탈전을 펼친다는 것이 핵심 내용. 결혼적령기 여성의 일과 사랑에 대한 고민을 담은 ‘싱글즈’에 여자 간 경쟁의식을 코믹하게 그린 할리우드 영화 ‘신부들의 전쟁’이 가미된 느낌을 준다.

‘웨딩 펀드’는 이를 오디뮤지컬컴퍼니가 소극장 뮤지컬로 옮긴 작품. 8월 16일까지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 1관에서 공연되는 이 뮤지컬은 연극과 공연 시기가 겹친다. 같은 원작이라도 연극으로 볼 때와 뮤지컬로 볼 때 느낌이 다르다는 나름의 윈윈 전략 아래 동시간대 대학로라는 같은 공간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연극이 직설적이면서 관객과 상호작용을 중시한다면 뮤지컬은 음악 못지않게 세련된 무대연출과 시각효과로 승부를 건다. 3명의 여고동창생 중 오랫동안 사귄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선화가 연극에선 에로소설 작가지만 뮤지컬에선 만화가로 순화된다. 주인공인 학원강사 세연의 이성친구인 성호의 취미도 ‘야동’ 보기에서 만화 보기로 바뀐다. 연극에서 세연은 관객을 수강생 삼아서 거침없는 대사를 쏴대거나 다른 등장인물에 대한 관객반응을 대변하며 관객과 계속 교감을 나누는 존재다. 반면 세연의 추억과 일상이 담긴 다이어리를 대형 무대세트로 설정한 뮤지컬에서 세연은 관객이 몰입할 대상으로 바뀐다.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 중인 라이선스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과 최근까지 공연된 창작뮤지컬 ‘사춘기’도 원작이 같다. 독일의 극작가 프랑크 베데킨트의 희곡이 그 원작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캐릭터 설정이 정반대라서 같은 작품이란 느낌이 안 들 정도다.

19세기 말 독일 청교도 학교를 무대로 한 원작에 충실한 ‘스프링…’의 주인공 멜키어는 어른들이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지식을 거부하는 영웅적 반항아다. 자신의 체험적 진실만을 믿는 그는 죽마고우 모리츠와 여자친구 벤들라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억울하게 뒤집어쓰지만 삶을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노래한다.

반면 무대를 21세기 한국의 고등학교로 바꾼 ‘사춘기’의 주인공 영민은 일종의 반(反)영웅이다. 세상만사에 냉소적인 영민은 자신의 오만함으로 인해 친구 선규와 여자친구 수희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그는 선규에게 부정행위로 시험성적을 올리는 방법을 알려줬다가 문제가 생기자 도움을 요청하는 선규를 외면하고 모범생 수희를 유혹해 임신을 시킨 뒤 모든 책임을 수희에게 전가한다. 두 사람이 죽은 뒤 그가 직면하는 것은 자기만의 감옥이다.

두 작품을 비교해서 보면 ‘스프링…’의 봄은 짙은 회색빛이지만 놀랍고 신비로운 ‘자줏빛 여름’에 대한 열망이 꿈틀거리는 반면 ‘사춘기’의 봄은 이미 불길함과 죽음을 상징하는 자줏빛 안개의 미로에 갇힌 느낌이다. 지식인을 영웅시하는 서구와 지식인을 불편해하는 한국의 문화적 감수성의 차이가 동일한 작품을 어떻게 다르게 해석했는지도 발견할 수 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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