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독일 최대 와이너리 ‘클로스터 에버바흐’

  • 입력 2009년 7월 24일 03시 00분


“신에게 바치는 와인” 수도원 900년 전통 그대로

《포도밭과 밀밭이 어우러진 들판을 따라간 시선은 꽤 멀리서 끝났다. 컴퓨터 ‘윈도 XP’의 배경화면에서 볼 수 있는 정도의 언덕은 있어도 산자락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 이런 땅을 ‘기름진’ 땅이라고 하나 보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독일 라인가우 지역의 슈타인베르크에 위치한 독일 최대 규모의 와이너리를 본 첫인상은 그랬다. 포도밭을 둘러싼 돌담의 총길이만 3.5km, 총면적 51만 m², 이 와이너리가 소유한 다른 곳의 포도밭까지 합치면 총면적 196만 m²에 이르는 ‘클로스터 에버바흐’를 찾았다.》

○흐린 하늘 아래서도 잘자라는 ‘리슬링’ 품종

독일 날씨는 1년 중 절반이 흐리거나 비가 온다. 햇빛을 먹고 자라는 포도를 기르기엔 좋은 조건이 아니다. 당연히 생산량도 남유럽이나 칠레 등 유명 포도주 생산지보다 적다.

하지만 이곳에서 생산되는 화이트와인은 와인 애호가들도 최고로 인정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유명 포도 품종인 ‘피노누아’는 잘 자라지 않지만 화이트와인을 만들기 알맞은 ‘리슬링’ 품종은 흐린 하늘 아래서도 잘 자란다는 것을 알았다.

기후가 좋은 국가에 비해 수확할 수 있는 포도의 양은 적다. 하지만 이 와이너리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고집스럽게 포도주를 만들지는 않았다. 여기서 만든 포도주는 신에게 바쳐지기 때문이다. 클로스터 에버바흐는 12세기 수도원에서 종교 의식을 치르기 위해 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다. 역사만 900년에 이른다.

약 200년 전까지 쓰던, 나무로 만든 압축기 대신 지금은 스테인리스 재질의 최신 압축기를 써서 포도를 짜고 있지만 자연기압에 가까운 압력으로 포도를 압축한다는 원칙만은 바꾸지 않았다. 포도즙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두 짜내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70% 정도의 즙만 짜내고 나머지는 버린다. 불순물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다.

와인을 숙성하는 보관 통도 지금은 모두 현대식으로 바꿔 온도와 습도를 관리한다. 그러나 최고 품질의 와인만은 여전히 오크통을 고집한다. 외형은 바뀌었지만 ‘신께 바칠 와인’을 만들던 선조들의 철학과 장인정신은 바뀌지 않았다는 것.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와인은 대부분이 화이트와인이다. 레드와인처럼 중후한 맛은 아니지만 가볍고 깔끔한 맛에 비해 향긋한 과일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예배당 위쪽에는 식당이 자리 잡고 있다. 몇 가지 독일 음식과 함께 이곳에서 만들어진 화이트와인을 맛볼 수 있다. 주로 소금, 후추 등 기본적인 조미료 외에 아무것도 넣지 않고 오븐에 구운 고기와 함께 화이트와인을 마신다. 화이트와인은 주로 해산물과 함께 먹는 것이 정석이라고 하지만, 고기와 같이 먹는 깔끔한 화이트와인도 고기의 다소 느끼한 맛을 깔끔히 씻어주고 입맛을 돋우는 데는 부족하지 않다.

○포도밭 한가운데 위치한 고즈넉한 수도원

와인을 보관하는 오크통이 가득 모인 숙성 창고.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어두침침한 가운데 희미하게 밝힌 촛불이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높은 창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떨어지는 햇빛도 이곳이 단순한 와이너리가 아닌 수도원임을 다시 한 번 생각나게 했다.

수도원이었던 클로스터 에버바흐. 역사만큼 오래된 건물엔 숙소에도, 기도실에도 창문은 없었다. 단열도 제대로 되지 않아 여름엔 찌는 듯한 무더위가, 겨울엔 살을 에는 바람이 파고들었지만 수도사들은 오전 4시부터 포도밭에 나갔다. 당시 수도사들의 평균 수명은 35세에 불과했다고 하니 열악한 환경과 수도사들의 신앙심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천장에는 수십만 장인지 수백만 장인지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기왓장이 덮여 있다. 역시 모두 수도사들이 일일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첨탑에 덮을 둥근 지붕에 맞는 모양과 쭉 뻗은 예배당 천장을 덮은 기왓장의 모양은 미묘하게 다르다.

이 와이너리는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장미의 이름’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십자가 형태의 예배당은 깨끗하면서도 고즈넉하다. 예전엔 수도사들의 기도 소리로 뒤덮였을 예배당은 현재는 종교 의식은 치르지 않는다. 다만 각종 공연이 열리는 장소로 독일 국민에게 개방되고 있다. 와이너리 관계자가 “짝” 하고 박수를 치자 일곱 번의 메아리가 들린다. 성가(聖歌) 등을 듣기에 가장 좋은 울림을 가진 구조라고 이 관계자는 전한다.

독일 사람들은 햇빛과 초록을 매우 사랑한다고 한다. 성악을 전공하고 독일에서 오랫동안 공부를 하고 있는 한 유학생은 “독일의 겨울은 매우 길고 음산한 날씨이기 때문에 독일 사람들에게 한여름 햇살은 매우 소중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날씨가 좋은 날엔 가까운 친척, 이웃들과 삼삼오오 들판으로 나가 햇살을 즐긴다. 포도밭과 밀밭으로 뒤덮인 이 와이너리 주변의 경관도 한여름 햇빛이 강한 때가 되면 선명한 초록으로 물들어 더없이 아름답다. 봄볕보다는 다소 따갑겠지만 현지인들이 그토록 아끼는 햇살 아래 초록이라면 우리 여행객들도 한번 즐겨볼 만하지 않을까.

슈타인베르크=글·사진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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