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조할아버지(대원군)께서 사시던 이곳 운현궁은 무척 뜻 깊은 곳입니다.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혼인식도 이곳에서 열렸어요. 글로벌, 세계민족을 외치는 시대일수록 고유한 전통문화가 중요한 법인데 우리 신세대들은 역사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23일 오후 고종의 손자이자 조선왕조의 ‘마지막 황손’인 이석 씨(68)가 서울 종로구 운현궁에 들렀다. 아버지의 일생을 다룬 소설 ‘의친왕 이강’(하이비전) 출간을 맞아 저자인 박종윤 작가와 자리한 그는 “사라진 지 불과 60, 70년밖에 되지 않은 조선의 역사와 문화가 잊혀지고 직계왕손의 생존 자체에도 무관심해졌다”며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아버지의 독립운동과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 등을 그려낸 책이 나와 힘이 된다”고 말했다.
왕족 중 유일하게 일제에 맞서 독립단체를 지속적으로 후원했던 의친왕은 순종의 동생으로 이 씨는 그의 열한 번째 아들이다. ‘비둘기 집’을 부른 가수이기도 한 그는 2004년부터 전북 전주 한옥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이 씨는 “아버지가 예순 둘에 절 낳으셨는데, 아침 문안인사를 드리면 볼을 쓰다듬으시며 ‘네가 몇째 아들이냐’고 물어보셨다”며 “할아버지같이 어려운 아버지라 대화는 많이 못했지만 늘 나라 걱정에 땅을 치며 우시곤 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2년간 전주대에서 역사 교양강의를 했던 그는 “조선 말기 일본인들에 의해 고종이 무능력한 임금이며 당파싸움이 나라를 망하게 했다는 등 잘못된 역사관이 주입됐다”며 “역사 강의를 위해 어디서 전화가 오면 지금이라도 뛰어 간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책을 통해 자라나는 세대가 전통문화, 역사에 관심을 더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