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미디어관계법의 국회 통과로 신문 대기업 등의 종합편성(종편)과 보도 채널 겸영이 허용되면서 그동안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의 여론과 콘텐츠 독과점 구조가 허물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종편과 보도 채널은 시청자에겐 지상파가 독점하는 여론 시장에 다양한 시각을 가진 뉴스를 제공하고 콘텐츠 제작사엔 프로그램을 소화할 방송 창구를 만들어 주며 지상파 콘텐츠가 휩쓸고 있는 케이블 위성 시장에는 새로운 콘텐츠의 공급처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 여론 다양성 확보
미디어관계법 통과로 종편과 보도 채널이 한두 개씩 생기면 지상파 방송 3사가 독점하고 있는 방송 여론 시장에서 다양한 시각을 접할 수 있게 된다.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 3사는 메인 뉴스와 여러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비슷한 시각을 전하고 있지만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방송사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 지상파 방송사들의 논조가 유사해 시청자들은 다른 시각에서 이 사건을 접하기 힘들었다. 윤영철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지난달 26일 언론재단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지상파 방송사들은 서거 전 노 전 대통령의 비리를 집중 보도하다가 서거 후 추모 분위기에 편승해 보도 태도를 정반대로 바꿨다”고 말했다.
윤 교수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 서거 전엔 KBS 81.8%, MBC 71.4%, SBS 94.7%의 비율로 비판 뉴스를 내보내다가 국민장 기간에는 우호적 뉴스를 KBS 49%, MBC 67.7%, SBS 75.9%의 비율로 방영했다. 즉, 방송 3사가 서거 전후 모두 한 방향으로 쏠리면서 시청자는 다양한 시각의 기사를 보지 못한 것.
지상파 방송 3사는 2004년 탄핵 방송이나 2007년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파동 등 사회적 갈등이 극심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한쪽의 시각을 대변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지상파 방송 3사의 여론 지배력은 전체 매체 가운데 60% 수준으로 추정되는 만큼 종편 채널 2개가 더 생기면 여론 지배력의 분산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KBS나 MBC는 특히 각각 지분의 100%와 70%를 정부가 사실상 보유하고 있어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문재완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현행 방송 체계는 KBS, MBC 등 국가가 실질적으로 소유하는 방송의 비중(매출 기준)이 77%로 국가 독점적 상황”이라며 “정권 교체기마다 KBS, MBC 사장과 이사 선임을 둘러싸고 갈등이 벌어지고 이념 편향성 시비가 이는 것은 국가 소유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이라고 말했다.
○ 콘텐츠 활성화 제고
방송 콘텐츠를 제작하는 외주제작사 등도 이번 미디어법 통과를 반기며 콘텐츠 신규 투자에 의지를 보이고 있다. 방송 콘텐츠의 유통과 소비가 지상파 방송사 위주로 이뤄지다 보니 그동안 지상파 방송사의 횡포를 막을 수 없었다.
외주제작사의 한 관계자는 “방송사가 갑이고 제작사가 을”이라며 “해외 촬영이나 추가 세트 건설 등 1억 원의 편당 제작비를 초과해도 모두 제작사 부담”이라고 말했다.
특히 제작사가 가져야 하는 저작권도 프로그램 공급 계약서를 쓸 때 관례상 양도 형식으로 지상파 방송사에 넘긴다. 독립제작사협회 관계자는 “외주사가 제작한 프로그램 저작권의 90% 이상을 지상파 방송사가 갖는다”며 “해외 판매 시 지상파 방송사가 상당한 수익을 가져가고 외주사에는 수익금의 일부를 줄 뿐”이라고 말했다.
또 지상파 방송사가 드라마 편성 시간을 주는 대신 톱스타 기용 등을 요구하는 것도 탤런트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솟는 한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다. 과다 출연료는 제작비 증가로 이어지고 제작사들은 이를 보충할 길이 없어 만성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이 같은 지상파 방송사의 횡포에 대해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는 지난해 2월 납품 과정의 불공정을 이유로 지상파 방송 3사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기도 했다.
외주 제작사의 또 다른 관계자는 “지상파 방송 3사가 독점 구조에 안주해 체질을 바꾸지 못했기 때문에 전체 콘텐츠의 활성화와 경쟁력 확보에 지장을 주고 있다”며 “방송 창구가 다양화되면 능력 있는 제작자들이 질 좋은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콘텐츠 활성화
지상파 횡포에 떨던 제작사 경쟁력 날개
○ 뉴미디어 독점 방지
케이블 위성 채널에서 지상파 방송 3사가 갖는 독과점 역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MBC는 16일 “지상파 방송사의 작년 시청률은 7.5%, 케이블 방송 온미디어와 CJ미디어의 평균 시청률은 3%와 2.5%였다”며 지상파의 독과점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케이블TV의 6월 평균 시청률을 보면 20위권 안에 MBC, SBS, KBS의 자회사 채널이 8개나 들어있다. 또 케이블 채널사용자(PP) 흑자 규모의 70% 이상이 이들의 몫이다. 게다가 다른 독립 PP들도 지상파 방송 3사의 프로그램을 재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김진경 케이블TV협회 미디어지원국장은 “종편은 기존 PP보다 훨씬 많은 자본을 투자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보도 분야가 강화되고 콘텐츠 수급도 다양해져 지상파 방송사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신문사가 운영하는 종편이나 보도 채널의 경우 지상파에 질적으로 뒤지지 않는 뉴스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 지상파에 설움 겪던 케이블방송-외주제작사 항변
“힘들게 만든 작품 지상파에 저작권 빼앗겨
독점 사라지면 ‘불공정 제작’도 사라지겠죠”
“케이블에서 시청률 1%만 넘겨도 ‘대박’인데 저희가 고생해서 만들어도 이 벽을 넘기가 쉽지 않죠. 하지만 지상파 드라마를 재방송하는 지상파 자사 케이블 TV들이 손쉽게 시청률 1%를 넘기는 것을 보면 제작하는 입장에선 허탈하죠. 그래서 MBC 드라마넷, SBS 드라마플러스, KBS 드라마 등 3강은 아예 빼놓고 시청률 순위를 매겨요. 어차피 이들이 1∼3위를 독차지하니까요.”
한 케이블방송 관계자는 이렇게 푸념했다. 지상파 3사의 독과점 현상이 케이블 시청률에도 영향을 끼쳐 건전한 경쟁 구도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22일 미디어관계법이 통과하자 케이블 업계와 외주 제작사들은 환영과 함께 기대감을 나타냈다. 뉴스, 드라마, 예능 등을 방송하는 종합편성채널뿐만 아니라 지상파에 대한 지분 소유가 가능해져 매체 간 칸막이가 사라졌기 때문.
케이블TV협회 관계자는 “지상파는 당장 참여가 힘들겠지만 종합편성채널의 경우 이미 업계가 공동 진입을 검토하고 있다. 개별 사업자가 추진하기에는 부담이 커서 종합유선방송사(SO) 등 여러 업체가 연합하는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케이블 업계는 SO들이 채널 번호를 선택하는 만큼 신규 진입 채널이 유리한 번호를 받으면 지상파와 비교해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디어법 통과를 계기로 외주제작의 불공정 관행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외주 제작자들은 좋은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해도 사실상 지상파 3사를 통하지 않고서는 유통이 힘들었다. 심재주 독립제작사협회 디렉터스쿨 교수는 “방송 매체력이 지상파 3사에 몰리면서 방송사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세상에 공개하는 것조차 힘들었다”며 “독립영화로 성공한 ‘워낭소리’도 지상파 3사로부터 거절당한 작품이었다”고 말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별도의 계약을 통해 외주제작사 제작물의 저작권을 양도 받아온 불공정한 제작관행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불공정 관행 속에서 드라마가 해외에 판매될 경우 많은 이익을 얻지만 이익의 대부분은 방송사의 몫이었다. 이관희프로덕션의 이관희 대표는 “작품을 공개할 수 있는 채널이 많아지면서 외주 제작사와 방송사 간 정상적인 제작 시스템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