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獨 등 ‘미디어 공룡’ 키워 콘텐츠 영토 확보 성큼성큼
○ ‘크로스 미디어’ 시대
신문+방송+통신기업
이종교배로 수익 창출
21세기 새 성장동력으로
○ 무너지는 미디어장벽
여론 다양성 확보 위한
규제는 최소로 줄여
교차소유 완전금지 全無
1990년대 중반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면서 가속화된 세계화의 물결은 거대 규모의 글로벌 미디어 기업을 탄생시켰다. 미국의 뉴스코퍼레이션, 타임워너 그룹, 독일의 베텔스만 등 세계의 유명 미디어 기업들은 활발한 기업 인수합병을 통해 거대 콘텐츠 제국으로 성장했다. 반면 1980년 신군부가 등장하면서 신문 방송 기업 간 높은 장벽을 세워놨던 한국은 우수한 ‘한류(韓流)’ 콘텐츠와 정보기술(IT)력을 가졌음에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미디어그룹을 키워내지 못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신문, 방송, 인터넷이 융합하는 ‘크로스 미디어’ 전략은 21세기 미디어그룹의 필수적인 생존조건으로 자리 잡고 있다.
○ 크로스 미디어가 대세
최근 글로벌 미디어그룹의 화두는 인터넷 기업과의 제휴다. 최근 NBC와 폭스가 출범시킨 손수제작물(UCC)사이트 ‘훌루닷컴’은 유튜브의 대항마로 인기를 끌고 있다.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퍼레이션도 온라인 인맥구축 사이트인 ‘마이스페이스닷컴’을 인수해 자사가 갖고 있는 영화, 뉴스, 음악 등 풍부한 콘텐츠를 인터넷을 통해서 서비스하고 있다. 월트 디즈니는 키즈 포털 ‘웹킨즈’, 애플 ‘아이튠스’ 등 웹사이트와 손을 잡고 오프라인에 이어 온라인에도 어린이 제국을 건설하고 있다. 올해만 최소 105개의 신문사가 문을 닫은 미국에서도 인쇄매체는 온라인 서비스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50개 신문 잡지사는 아마존의 전자책(e북)인 ‘킨들’을 통해 유료 신문구독 서비스를 하기로 했다.
일본에서도 거대 신문사와 민영방송사, 통신기업 간의 짝짓기가 한창이다. 시장점유율 1위인 NTT 도코모와 니혼TV가 제휴해 설립한 휴대전화 뉴스서비스 ‘아이채널’이 대표적인 사례다. 도코모는 지난해 8월 니혼TV의 동영상 서비스를 제공한 데 이어 올 가을 요미우리신문과 손을 잡고 뉴스 잡지 정보 서비스를 할 예정이다. 통신업계 점유율 2위인 KDDI도 지난달부터 아사히신문의 뉴스와 아사히TV의 동영상을 휴대전화를 통해 유료로 서비스하고 있다. 신문과 방송 통신회사가 손을 잡고 새로운 수익기반을 구축하지 않으면 생존이 위태롭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본의 경제산업성은 현재 14조 엔 규모인 일본 콘텐츠 시장을 20조 엔으로 늘리는 ‘콘텐츠 글로벌 전략’을 수립했다. 중국에서도 중국 푸뉘(婦女)보, 광저우(廣州)일보 등이 휴대전화를 통한 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아사히신문 콘텐츠사업센터의 나토리 미쓰히로(名取光廣) 차장은 “신문 방송 통신이 각자의 영역에 한정해 서비스를 하는 것은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영역을 넘어 제휴하는 ‘크로스 미디어’가 최근 추세”라고 설명했다.
○ 허물어지는 미디어 간 장벽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미디어 간 교차소유를 완전히 금지한 나라는 없다. 대신 시청점유율 또는 지역별 규제를 통해 여론시장의 다양성을 확보한다. 미디어 콘텐츠는 다양한 채널과 외국 시장에 유통시킬 경우 추가비용 없이도 막대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각국은 세계적인 미디어기업을 키우기 위해 지속적으로 미디어 간 소유규제를 완화해왔다.
독일에는 신문 TV 라디오 위성 케이블 IPTV 등의 결합에 제한이 없다. 단, 여론시장 점유율이 30%를 초과할 경우 추가진출을 금지하고 있다. 영국도 1996년과 2003년 두 차례 소유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방송법을 개정해 전국 발행부수 20% 이하인 신문사는 방송에 진출할 수 있다. 공영방송 BBC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영국에서 2003년 규제완화의 결과 민영방송 ITV 내의 내부합병이 큰 진전을 이뤄 ITV는 경쟁력 있는 민영방송으로 다시 태어났다. 미국은 전국 210개 권역별로 동일 시장 내에서는 교차소유를 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동일시장 밖으로 넘어가면 교차소유가 인정된다. 유에스에이투데이 등 90개 신문을 소유한 가넷재단이 지상파 방송을 23개나 거느리는 등 미국은 복합미디어그룹의 천국이다.
일본은 1950년대부터 신문과 방송의 겸업이 허용되는 등 미디어 간 장벽이 없었다. 방송사의 여론 독과점을 막기 위해 존재하던 지분제한 규정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1995년부터 완화했다. 일본에서는 유력 중앙 일간지가 모두 주요 5개 민영방송과 자본 제휴 관계를 맺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TV아사히, 요미우리신문은 니혼TV, 니혼게이자이신문은 TV도쿄, 마이니치신문은 TBS, 산케이신문은 후지TV의 지분을 각각 소유하고 있다. 신문과 방송사는 고위 임원 인사를 교류하는 등 인적 교류도 활발하지만 ‘여론 다양성’에 대한 우려 목소리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중국에서도 미디어 간 장벽은 없다. 신문과 방송, 통신, 라디오라는 전통적인 미디어 구분도 최근 수년간 자연스럽게 엷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상하이미디어그룹(SMG)이다. SMG는 3개 방송국에서 12개 TV채널과 11개 라디오채널을 운영한다. 또 제일재경일보 등 3종의 신문 잡지를 소유하고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佛이 세계적 미디어그룹 ‘불모지’인 까닭은?
TV-신문-라디오 3개 매체중
동시소유는 2개만 가능
법 적용도 일관성 없어 혼선▼
“프랑스에는 세계적 멀티미디어 그룹이 없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일간 르몽드와의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올 초 인쇄매체 언론인 대회를 앞둔 시점이었다.
그는 “인쇄매체를 소유한 라가르데르 그룹은 TV 방송사가 없고, TV 방송사를 소유한 부이그 그룹은 인쇄매체가 없다”며 그 이유도 언급했다.
이 말은 파리마치, 주르날뒤디망슈, 엘르 등 영향력 있는 인쇄매체를 보유한 라가르데르 그룹이 거대 방송사를 갖거나 TV 방송 TF1을 보유한 부이그 그룹이 거대 일간지를 가질 수 있을 때 독일 베텔스만이나 영어권 뉴스코퍼레이션 같은 세계적 미디어그룹이 나올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고 거센 찬반 논란이 일었다.
프랑스에는 사회당 소속인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집권 초에 만들어진 언론 반(反)소유집중법이 있다. 이 법에는 ‘셋 중 둘(3분의 2)’ 규정이 있어서 한 회사가 TV, 종합일간지, 라디오 중 세 매체를 동시에 다 보유할 수 없고 두 매체까지만 가질 수 있다.
물론 이 반소유집중법도 한국의 언론법에 비하면 훨씬 앞선 측면이 있다. 법 규정만 놓고 보자면 한 회사가 TV와 일간지 등 두 매체를 동시에 보유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언론인 대회는 사르코지 대통령이 강조한 세계적 멀티미디어 그룹의 육성에 공감하면서도 ‘반소유집중법은 그 자체로는 멀티미디어 그룹 형성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며 대통령의 전면적인 법개정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프랑스의 언론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언론인 대회도 인정한 것이지만 반소유집중법은 너무 복잡할뿐더러 미묘한 해석에 좌우되기 쉬워 감독기관의 결정을 누구도 미리 예측할 수 없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 결과는 현실이 잘 보여준다. 실제 프랑스에 전국 규모의 TV와 일간지를 동시에 보유한 회사는 법이 허용하고 있음에도 하나도 없다.
이런 이유로 반소유집중법의 규정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사르코지 대통령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2005년 랑슬로 위원회가 만들어져 반소유집중법이 정한 매체 간 칸막이를 없애고 독일이나 영국식 시청자점유율 제한 방식으로 규제를 단순화할 것을 권유했다.
프랑스인의 1인당 신문구독률은 독일인이나 영국인의 절반 수준이다. 인터넷 뉴스매체의 등장으로 신문구독률은 더 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은 인쇄매체가 수익성을 유지하면서 살아 갈 길은 방송과의 융합밖에 없다고 제안한 것이다. 그러나 군소매체가 주도한 언론인 대회는 그 제안을 거부하고 국가의 더 많은 지원을 강조했다. 이에 사르코지 대통령은 “언론이 수익을 내야 독립성이 유지되는 것이지 국가에 의존하기만 해서야 무슨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고 비꼬고 개혁에서 손을 뗐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