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집 한국인 비행장 건설에 동원”

  • 입력 2009년 7월 29일 02시 59분


연합군이 치열한 공방전 끝에 점령한 지 2주 뒤의 나잡 비행장. 사진 제공 지식산업사
연합군이 치열한 공방전 끝에 점령한 지 2주 뒤의 나잡 비행장. 사진 제공 지식산업사
권주혁씨 뉴기니섬 ‘나잡비행장’ 출간

태평양의 뉴기니 섬 해안에 상륙하는 일본군 육전대(해병대), 항공기를 앞세우고 반격하는 미군.

목재 전문기업 이건산업의 권주혁 고문(56·사진)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봤던 만화 내용을 아직 기억한다. ‘제2차 세계대전 비화, 죽음으로 가는 길’. 태평양전쟁 때 호주 북쪽 뉴기니 섬에서 벌어진 연합군과 일본군의 전투를 그린 만화다.

언젠가 뉴기니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그에게 기회가 왔다. 이건산업이 1979년 파푸아뉴기니의 불로로 열대삼림대학에 유학 보낸 직원 가운데 한 명으로 뽑힌 것이다. 그는 이듬해 인근 솔로몬 제도로 건너갔고 이건산업 현지법인에 눌러앉았다. 솔로몬 제도는 중학교 1학년 때 ‘피에 젖은 과달카날’이라는 잡지 기사를 읽고 꼭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곳이다. 그로부터 30년간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남태평양에서 보냈다.

그는 태평양전쟁에 대한 오랜 관심에 현지 경험을 결합해 태평양전쟁에 대한 책을 쓰기 시작했다. 2001년에 솔로몬 제도의 과달카날 전투를 다룬 ‘헨더슨 비행장’을 썼고, 키리바시 섬의 전투를 그린 ‘베시오 비행장’(2005년)에 이어 최근 ‘나잡 비행장’(지식산업사)을 펴냈다.

‘나잡 비행장’은 뉴기니 섬의 나잡 비행장 쟁탈전을 중심으로 뉴기니 섬에서 벌어진 연합군과 일본군의 2년 8개월에 걸친 전투를 다뤘다. 그는 전투기 잔해가 있는 숲 속, 수송선이 침몰한 바다 속을 일일이 다니며 관찰한 내용을 곁들였다. 또 참전했던 미국인, 일본인, 호주인들의 이야기를 채록하고, 호주와 일본의 관련 문서를 찾아내 전투를 상세하게 재구성했다.

비행장을 화두로 삼은 이유에 대해 27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태평양전쟁의 핵심은 제공권 장악을 위한 비행장 쟁탈전이었습니다. 일제에 강제로 끌려간 한국인들이 현지 비행장 건설에 많이 투입됐다는 사실도 비행장에 주목하게 된 이유지요. 태평양전쟁은 강제 징집된 한국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은 전투인데도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기록해야겠다는 의무감이 들었습니다.”

그의 조사에 따르면 뉴기니 전투에서만 한국 청년 3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는 스스로 “직업군인도, 역사학자도, 문필가도 아닌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꼼꼼한 조사와 답사를 토대로 쓴 그의 책은 전문가의 저술을 능가한다는 평을 듣는다. 외국 학자들의 자료 제공 요청도 많다.

그는 태평양의 또 다른 격전지를 소재로 ‘펠리류 비행장’ ‘클라크 비행장’ ‘노스 비행장’을 추가로 내고 ‘비행장 시리즈’를 완결지을 생각이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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