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을 올려라.” ‘둥둥’ 북이 울렸다. 황토 물을 들인 광목으로 만든 돛이 팽팽해지자 선장은 힘차게 소리쳤다. 곧이어 선원과 도공 10여 명이 닻을 매단 밧줄을 힘차게 끌어당겼다. 뱃머리가 바닷물을 가르기 시작하자 고요했던 강진만이 조금씩 일렁였다. 3일 오전 11시 반 전남 강진군 마량면 마량항. 900여 년 전 그때처럼, 전통 돛배 온누비호(온 세상을 누빈다는 뜻)는 청자 200점을 싣고 포구를 떠나 서해로 향했다.》
소나무로 만든 전통 돛배
강진서 청자 200점 싣고
강화 왕복 엿새 대장정
“개성까지 못가 아쉬워”
형형색색의 만선기(滿船旗)를 단 쪽배들이 멀리까지 배웅을 나왔다.
이날 항해는 고려청자의 고장 강진군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마련한 고려청자운반선의 뱃길 재현 행사. 마량항을 출발해 전남 신안군 압해도∼전북 부안군 격포항∼충남 태안군 안흥항∼인천 강화군 외포항까지 항해한 뒤 8일 강진으로 귀항한다. 왕복 1000여 km의 대항해다. 온누비호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태안 앞바다에서 인양된 청자운반선을 모델로 삼아 건조한 전통 돛배(길이 19m, 너비 5.8m). 2개의 대형 돛과 호롱, 치(방향타) 등을 갖췄다.
건조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배에는 소나무향이 그윽했다. 다양한 모양의 청자들은 뱃머리 쪽 선실 바닥에 볏짚을 깔고 대나무와 새끼줄로 묶어 고정시킨 채 안전하게 놓여 있었다. 뒤쪽엔 옛날 배처럼 밑 부분을 뚫어 화장실을 만들어 놓았다. 배는 샛마파람(동남풍)을 타고 평균 8노트(시속 약 15km)의 속도로 항해했다.
오후 6시경, 배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으로 유명한 전남 해남군의 울돌목에 다다랐다. 김훈 씨가 소설 ‘칼의 노래’에서 ‘겨울 산 속의 짐승이 우는 듯 엄청난 소리를 낸다’고 묘사했던 곳. 물살은 거칠고 빠르게 흘렀다. 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치잡이를 맡은 신연호 씨(71)가 “중장(배의 난간)을 꽉 잡아. 그리고 청자를 살펴”라고 소리쳤다.
선원들은 서둘러 선실로 내려갔다. 단단하게 묶어 놓은 청자는 모두 무사했다. 신 씨는 “젊은 시절 30년 넘게 돛단배를 타고 부산, 제주도, 안흥항까지 옹기를 팔러 다녔다”며 “청자를 싣고 예전처럼 돛단배로 항해하다니 뭐라 말할 수 없다”고 감격해했다.
울돌목을 무사히 빠져나온 배는 서해로 접어들었다. 오후 8시 바다에 어둠이 깔렸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성낙준 소장(55)은 망망대해 북쪽을 바라보며 “원래 고려 수도였던 개성까지 가려고 했는데 경색된 남북관계 때문에 개성까지 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고 했다.
오후 8시 반 첫날 정박지인 신안군 압해도 송공항이 눈에 들어왔다. 선원과 도공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선장을 맡은 김종열 강진군청 경제발전팀장(55)은 “첫날이라 긴장했는데 날씨가 좋아 무사히 항해를 하게 돼 정말 다행”이라며 “고려청자 해상 루트를 따라 항해를 하니 너무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종일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천천히 닻을 내리는 선원과 도공들의 표정은 청자의 비색처럼 맑았다.
강진·신안=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