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 해안에 있는 스웨덴의 칼마르 시(市)에는 스토르토리에트라는 광장이 있다.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성당이 있는 이 광장은 종교 정치 상업의 중심지이자 만남과 교류의 장소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야외주차장으로 전락하면서 본래 역할이 축소됐다. 시는 1999년 광장 되찾기 사업을 시작했다. 차도와 인도를 분리했고 화강암 자갈과 블록으로 도로를 포장했다. 날렵한 철제 가로등까지 세워진 이곳은 이제 도시의 중심이자 역사적 중심지로 새롭게 자리잡고 있다.
벨기에 나무르의 담 광장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폭격으로 원래 형태를 잃었다. 나무르 시는 1996년 광장 재개발사업을 실시했다. 주차장을 지하로 옮긴 뒤 텅 빈 광장에는 분수와 벤치를 설치했다. 새롭게 태어난 담 광장에는 활기가 넘친다.
이처럼 유럽에선 도시를 재정비할 때 광장을 복원하거나 신설하는 것을 주요 사업에 포함시킨다. 도시의 주인인 시민들에게 걷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기 위해서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광장이 1일 개방된 것에 맞춰 유럽의 광장을 탐구한 책 ‘광장’(생각의나무)이 나왔다. 이탈리아, 그리스, 프랑스 등 5개국의 연구기관이 공동으로 광장의 정의와 역사, 역할 등을 분석한 책이다. 유럽 24개국 60여 개 광장의 사진 700여 장을 곁들였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IUAV건축대 프랑코 만쿠조 교수를 비롯한 저자들은 “유럽에서 광장은 시민사회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장소”라고 설명한다. 회합, 교환, 상호 인식의 장소인 광장이라는 열린 공간이 유럽 정체성의 근원을 이룬다는 것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광장은 소통의 장소이기도 하다. 개인의 사회화와 대면을 위한 장소이자 기억이 집합되며 활동이 교차하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저자들은 오랜 역사를 지닌 유럽의 광장들을 통해 광장이 지녀야 할 요건을 명시한다. 우선 광장은 도시의 중요한 장소, 시민들이 모이기 쉬운 장소에 자리 잡아야 하다. 또 광장은 단독으로 완결되거나 독립적인 공간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운영을 위해 다른 공간과 연결되는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들은 광장의 역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가장 큰 역할은 ‘장터’로서의 기능이었다. 장터로서의 광장은 흥정과 타협이라는 사회적 훈련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뮌스터 광장, 프랑스 툴루즈의 카피톨레 광장 등은 여전히 장터로 활용되고 있다.
광장은 또 공연이나 전시가 활발히 이뤄지는 문화 중심지다.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문화의 장이라는 게 특징이다. 스위스 로카르노의 그란데 광장에선 영화축제가, 이탈리아 사수올로의 장미광장에선 문학축제가 열린다.
저자들은 “광장의 주인은 사람”이라면서 광장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집이 거주하는 가족의 모습을 반영하듯 광장은 그 광장의 주인인 주민들의 또 다른 모습이다. 좋은 사람들이 좋은 장소를 만드는 것이 사실이라면 좋은 장소는 좋은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우리의 도시에서 좋은 광장이 필요한 이유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