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 중견급 이상 문인들 거주
황석영 - 김훈 - 은희경 씨 등 모여
전위예술 - 모던 감성 상징 홍대앞
김경주 - 강정 - 한유주 씨 등 터잡아
약속 없이 들러도 언제나 문인들로 떠들썩하던 공간. 1970, 80년대 서울 명동의 ‘갈채’나 ‘은성’, 인사동의 ‘시인’ ‘귀천’ 등은 작가들의 사랑방이었다. 이런 ‘아지트’ 개념이 사라진 요즈음 서울의 문인들은 거주지역별로 새로운 집결지를 형성해 가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젊은 작가들에게 각광받는 은평구 일대나 중견급 이상 작가들이 대거 거주하는 경기 고양시 일산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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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롭게 떠오르는 ‘서북청년단’
최근 3, 4년 사이 젊은 작가들의 집결지로 새롭게 떠오른 곳이 서울 은평구 일대다. 서울 내에서 개발이 늦어 낙후한 지역으로 손꼽히는 이 일대를 거점으로, 한 무리의 문인이 ‘서북청년단’이란 별칭으로 불리고 있다. 소설가 김도언 김숨 김태용 씨, 시인 신동옥 박장호 씨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주로 6호선 새절역 인근 1980년대 분위기의 호프집 ‘그래그래’나 신동옥 시인의 자취방에 모인다. 시 동인 ‘인스턴트’에 참여하고 있는 신 씨의 손님도 많지만 위층에 소설가 김도언 김숨 씨 부부가 살고 있어 모임이 거미줄처럼 확산될 때가 많다.
작가들이 이 지역을 선호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와 맑은 공기, 서울이면서도 독특한 지방색이 묻어나는 점 때문이다. 이름 그대로 투박하면서도 강렬한 ‘서북 기질’도 공통점이다. 김숨 씨는 “모임은 대부분 즉흥적으로 이뤄지는 편인데 문학을 막 시작한 청년들처럼 순박하고 진지하게 시, 소설 이야기를 한다”고 말했다. ‘서북청년단’이란 명칭은 술자리마다 우르르 몰려다니는 일군의 청년들을 보고 소설가 이순원 씨가 붙여줬다.
○ 작가들의 잇 시티(it city) 일산파
수도권 신도시 중에서도 문인들이 다수 밀집돼 있어 작가들의 ‘잇 시티(it city)’로 꼽히는 곳이 일산이다. 소설가 황석영 김훈 은희경 김연수 김인숙 김중혁 씨, 시인 함성호 김소연 씨 등이 거주하고 있다. 자택 근처의 오피스텔에 작업실을 둔 작가도 많아 오며 가며 모이는 단골집도 있다. 정발산동의 독일맥주집 ‘크롬바허’, 장항동의 정종집 ‘타미’ 등에서 모임이 잦다.
작가들이 유독 일산에 많이 사는 이유는 비슷한 환경을 가진 다른 지역에 비해 집값이 저렴하고 출판사가 밀집한 파주출판단지와 마포구 서교동 일대에 접근하기 쉽기 때문이다.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밀집돼 있는 데다 호수공원 등이 있어 쾌적한 작업환경을 갖춘 것도 매력 요인으로 꼽힌다. 창비 문학팀 김정혜 팀장은 “작가들이 일산에 모인 지 10년 정도 됐고 주로 중견이나 원로 작가가 많다”며 “문인들의 속성상 초기에 자리를 잡은 뒤부터 다른 작가들도 모여드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 모던 감성과 전위, 홍익대 앞
뉴욕의 브루클린, 런던의 이스트엔드처럼 서울에는 홍익대 앞이 있다.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의 상징적인 공간이자 문학과지성사, 이룸출판사 등 200여 개 출판사가 밀집해 열거하기 힘들 만큼 많은 문인이 살고 있다. 이곳에 작업실을 둔 김경주 시인은 “새벽에 골목길을 걷다 전봇대를 붙들고 게워내는 사람, 술 취해 쓰러진 사람들을 자세히 보면 다 아는 작가”라고 말한다.
지하철 홍대입구역 상수역 합정역까지 홍대문화권은 광범위하다. 시인 황병승 강정 이영주 씨, 소설가 한유주 김유진 윤이형 박상 씨 등이 이곳에 산다. 텍스트실험 동인 ‘루’ 등 젊은 문인들이 즐겨 찾는 신촌 기찻길 인근의 바 ‘설탕’이나 탐앤탐스 홍대점에서도 작가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록그룹 침소밴드의 리드보컬인 강정 시인처럼 다양한 문화 장르를 넘나들거나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발표하는 젊은 작가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 술과 공연과 문학이 있는 곳, 강북의 대학로
서울 노원구 성북구 등 서울 북동부 지역에 거주하는 작가들은 종로구 대학로를 중심으로 모임을 갖는다. 시인 장석원 장만호 권혁웅 조연호 씨, 소설가 박금산 씨 등이다. 조연호 시인은 “고려대 출신 시인이 많은 점, 세련됨이나 고급스러움과는 다소 거리가 먼 강북 문화를 향유하고 있다는 게 특색”이라고 말했다. 동숭동의 ‘호질’ ‘두레’ 등이 단골집이다. 경기 안양시 군포시 등에 사는 문인들의 경우에는 등산모임이 있다. 문학평론가 염무웅 임규찬 정홍수 씨, 소설가 성석제 이혜경 씨 등이 관악산이나 수리산 등 인근 지역에서 등산을 함께한다.
서울 강남과 경기 성남시 분당의 경우 문인들이 모이는 곳으로는 계간 ‘세계의 문학’ 모임이 잦은 신사동 가로수길의 ‘다이너라이크’나 소설가 김원일 씨, 문학평론가 박덕규 씨가 즐겨 찾는 양재역 인근의 ‘도이치하우스’ 등이 있다. 민음사 강미영 문학팀장은 “작가들이 주로 사는 곳이나 출판사가 많은 지역과 먼 데다 물가가 비싸 부담을 느끼는 분이 많다”며 “편집회의나 시상식 뒤풀이 장소 외에 이 지역을 거점으로 한 작가들의 모임이나 단골집은 드문 편”이라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