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위상 축소, 실용서의 과점체제, 시와 인문사회서의 퇴출.’
한국인들의 독서 성향이 2000년대 후반 들어 실용서에 집중하는 경향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소설 등 문학서의 비중이 크게 줄어들고 있고 특히 번역서들이 넘쳐나면서 국내 작가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서울 교보문고가 문을 연 1981년부터 2009년 상반기까지 29년 동안의 연도별 베스트셀러 상위 20위권을 분석한 결과다.
○ 소설, 위상이 흔들리다
베스트셀러 상위 20위권에서 소설이 차지한 비중은 연평균 33.6%로 논픽션·에세이(30.2%)나 실용서(16.6%)보다 높다. 그러나 연도별 추이를 살펴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1981년 20위권에 소설은 12개나 이름을 올렸지만 2009년 상반기에는 6개에 불과했다. 역대 가장 낮았던 시기는 외환위기의 1998년으로 소설은 4권에 불과했다.
특히 문학 시장의 글로벌화가 본격화된 2000년대 들어서서는 국내 작가의 상위권 소설 점유율이 30%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외국 번역소설의 영향력이 확장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005년 베스트셀러 20위에 든 소설 8권 중 7권이 외국 소설이었다. ‘다빈치코드’(댄 브라운) ‘모모’(미하엘 엔데) ‘연금술사’(파울로 코엘료)의 시대였다.
2006년에도 5권 중 3권이 외국서였던 것을 비롯해 2007∼2009년에는 6권의 소설 중 4권이 번역소설이었다. 2006년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렌 와이스버거), 2007년은 ‘파피용’(베르나르 베르베르), 2008년은 ‘구해줘’(기욤 뮈소), ‘사랑하기 때문에’(기욤 뮈소) 등의 외국소설이 인기를 끌었다.
‘시크릿’-‘마시멜로…’ 등 최근 자기계발서 각광
문학은 번역 소설이 득세 詩-인문사회 사라져 가
○ 실용서, 베스트셀러 절반 넘기도
어학, 컴퓨터, 건강, 경제경영, 자기계발, 요리, 재테크 분야 등의 실용서는 1993년 ‘프로비즈니스 삼성맨’(이경훈) 등 2권이 베스트셀러 20위권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후 줄곧 강세다. 1990년대 중반까지 컴퓨터와 영어 관련 서적 등 업무에 활용할 수 있는 직접적인 지식을 다룬 책이 인기였다면 외환위기 등을 거치면서 직장생활에 도움이 되는 처세술 등을 다룬 자기계발서의 수요가 커졌다. 2000년대 후반에는 ‘시크릿’이나 ‘마시멜로 이야기’처럼 우화를 이용한 자기계발서의 시대를 맞고 있다. 특히 2007년과 2008년에는 실용서가 각각 11권씩 20위권에 진입하면서 절반을 넘겼다.
○ 사라지는 시와 인문사회서
실용서가 베스트셀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시집, 인문사회서, 아동서는 사라지고 있다.
시는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 직전까지 10년간이 전성기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1984년 이해인의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가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1994년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사실상 창작시의 전성기가 끝났다”고 말했다.
인문교양서는 1980년대에만 해도 3∼5종씩 이름을 올렸지만 그 위세가 점차 꺾여 2003년 이후로는 목록에서 사라졌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베스트셀러 목록의 시대 변천을 보면 한국 사회의 중심 키워드가 ‘시대정신’에서 ‘개인의 안위’로 넘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하고 “경제위기 때마다 위로와 격려를 주제로 한 책들이 인기를 끄는 공통된 현상도 발견된다”고 덧붙였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