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친구가 받아 적은 팝아트 대가의 일상

  • 입력 2009년 8월 8일 02시 59분


◇ 앤디 워홀 일기/팻 헤켓 엮음·홍예빈 옮김/976쪽·2만9500원·미메시스

팝 아트 운동의 선구자인 앤디 워홀의 일상을 다룬 일기. 1976년 11월 24일부터 워홀이 사망 5일을 앞두고 병원에 실려 가기 직전인 1987년 2월 17일까지의 일상사를 기록했다. 세계적 거장의 10여 년 삶이 원고지로 무려 6907장에 담겼다.

재클린 케네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스티븐 스필버그, 메릴린 먼로, 실베스터 스탤론, 아널드 슈워제네거, 잭 니컬슨, 엘리자베스 테일러, 마이클 잭슨, 조디 포스터 등 당대 유명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한다.

전위적인 작품 활동으로 유명했던 그의 작업 방법을 알려주는 장면들은 특히 눈길을 끈다. 1977년 6월 28일 화요일에는 ‘오줌(Piss)’ 작품 작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계속 점심을 먹다 말다 했다. ‘오줌(piss)’ 작품을 위해 스펀지 걸레 자루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로니에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오줌을 누지 말고 사무실에 올 때까지 되도록 참으라고 했다. 비타민B를 엄청 많이 섭취한 그의 오줌이 캔버스에 뿌려지면 정말 예쁜 색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전시회장에서 지린내를 풍겼다.

길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던 애송이 장미셸 바스키아에게 10달러를 빌려 주고 못 받았다는 대목(1982년 10월 4일)이 웃음을 짓게 만든다. 야스퍼 존스나 잭슨 폴록 등 동시대 예술가들과의 교류와 그들의 작품에 대한 감상, 표면에 드러내지 않는 묘한 경쟁심도 읽을 수 있다.

‘악동’으로만 알려진 것과 달리 예의바르고 여린 면모도 엿볼 수 있다. 그는 사람들에게 일을 시킬 때도 지시형을 쓰지 않았다. “…할 수 있을 것 같아?”라며 기대에 찬 어조로 물었다.

예술작품을 찍어내고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조수를 고용했던 워홀답게 일기도 자신이 직접 쓰지 않았다. 매일 오전 9시 반에 이 책의 엮은이인 친구 팻 해켓에게 전화로 전날의 일과를 불러주었던 것. 팻 해켓은 워홀의 택시비와 식대까지 포함해 시시콜콜한 내용을 꼼꼼히 받아 적었다. 훗날 총 2만 장 중 워홀의 특징이 잘 드러난 일기들만 골라 이 책을 만들었다.

책에는 원고지 125장 분량의 상세한 연보, 일기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어판에만 특별히 만든 원고지 220장 분량의 인명사전 등이 실렸다. 원고의 방대한 양 때문에 번역을 시작한 후 책이 나오기까지 6년 5개월이나 걸렸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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