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은 결국 관료, 즉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관료사 연구를 통해 당시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펼쳤는지, 시대상은 어떠했는지 등을 모두 알 수 있죠.”
갑오개혁(1894) 이후 한국 근현대기의 관료사를 19년째 연구해오고 있는 안용식 연세대 행정학과 명예교수(68·사진). 그가 최근 1919년부터 1942년까지 읍면장의 명단과 재직기간 등을 담은 ‘일제하 읍면장 연구’(한국국정관리학회)를 펴냈다. 이번 작업으로 갑오개혁부터 1945년까지 일제강점기 관료사 연구를 모두 마무리했다.
안 교수는 이번 연구를 위해 ‘조선총독부급소속관서직원록’, 국가기록원에서 보관하고 있는 당시 읍면장 이력서, 조선문우회가 발간한 ‘조선신사보감’ 등 각종 문서에 흩어져 있는 읍면장 관련 자료를 모으는 데만 1년여를 투자했다.
“학문하는 사람에게는 남이 근접할 수 없는 분야 하나를 평생 연구하는 고집이 필요합니다. 50세가 되면서 남이 안 한 분야를 파고들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게 관료사였습니다.”
안 교수가 밝혀낸 일제강점기 읍면장 수는 총 1만2273명. 이 가운데 한국인은 97.5%인 1만1971명이었다. 그러나 읍장 295명 중에는 일본인이 188명으로 한국인의 두 배에 가까웠다. 재직 기간은 3년 미만인 경우가 약 50%에 달했다. 안 교수는 “조선총독부가 잦은 읍면장 교체로 지방에 친일인사를 확보하려 했음을 보여준다”며 “당시 읍면장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바로 재산 유무였는데 이는 부정부패 문제를 해결하고 식민지 재정 확보를 위한 방침이었다”고 분석했다.
안 교수는 경추 디스크로 수술을 받은뒤 13일 퇴원했다. 그는 통화에서 “관료사 연구를 시작한 지 20여 년이 다 됐다.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느라 오랫동안 쪼그리고 앉아 있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다”며 웃었다.
안 교수가 지금까지 펴낸 연구서는 ‘조선총독부하 일본인관료연구’ 5권, ‘대한제국관료사연구’ 5권, ‘대한민국관료연구’ 8권 등 20권이 훌쩍 넘는다. 이처럼 19세기 말 이후의 관료사를 총정리한 것은 안 교수가 처음이다. 안 교수는 “요즘 학자들은 고집을 갖고 한 분야를 파고들지 않으려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젊은 대학원생들이 한자를 잘 몰라 옛 문서를 읽을 줄 모르는 점도 걱정”이라고 전했다. 앞으로 남은 연구는 1967년부터 2009년 현재까지의 관료사 연구. “몇 년 정도 걸리겠느냐”고 묻자 안 교수는 “평생 걸릴 것”이라고 답했다.
“아마 여생을 다 바쳐도 못 끝낼 겁니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고, 남은 부분은 후학들에게 맡기려고 합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