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는 도시에 역을 만들었다.
그리고 철도 역사(驛舍)는 그 도시의 얼굴이 됐다.
역사는 교회나 시청처럼 도시를 상징하는 시설이다. 특히 한 나라의 수도에 만들어진 역사는 전국 각지로부터 모여드는 철도의 종착역이었기 때문에 수도의 ‘문(門)’이 될 수 있을 만한 장소에 자리 잡았다.》
유리로 치장한 새 驛舍 사람을 밖으로 내모는 듯
먼 곳 이어주는 철도처럼 단절된 도시 이어주길…
역사는 도시 안에 속하는 동시에 도시 바깥으로 확장을 시작하는 공간이다. 이곳은 도시의 내부가 되는 한편 외부도 된다. 서울역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시작하는 얼굴이자 ‘문’이다.
건물 내부에서도 서울의 고유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훤하고 깨끗하지만, 그것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건물일 뿐이다.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쇼핑센터와 백화점 건물도 역사의 역할과 어울리지 않게 주변 공간을 장악하려는 듯 거북한 모습으로 서 있다. 이 상업용 건물은 역 안팎에서 사람들이 벌이는 다양한 행위의 드라마를 담아내지 못한다. 그런 까닭인지, 당연히 서울의 얼굴이 돼야 할 서울역사는 서울시가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 같은 제목으로 발간한 ‘서울: 도시와 건축’이라는 책에 모두 빠져 있다.
철도는 문자 그대로 ‘철(鐵)의 길(道)’이다.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칸은 “철도역은 건물이기 전에 길이 되려 한다”고 말했다. 철도역은 교통 흐름은 물론 그 시설을 이용하거나 그 앞을 지나다니는 수많은 사람의 흐름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길’로 설계돼야 한다는 뜻이다.
모든 역이 그러하듯 서울역은 복잡하게 얽힌 길 위에 서 있다. 하지만 지금의 서울역사는 그렇게 얽힌 흐름을 하나의 잘 정리된 복합체로 만들지 못했다. 새 서울역사는 오히려 그곳 사람들을 밖으로 밀어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역은 원래 기다림의 목적으로 소비되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도시 안에 존재하는 역사는 ‘역을 이용하는 승객이 아닌 사람들’을 전제로 계획할수록 좋다. 그러나 지금의 서울역에는 이런 운치나 여유가 없다.
사람들이 신속하게 타고 내려서 건물을 빠져나가도록 역사 건물을 계획한 것은 얼핏 합리적인 듯 보인다. 하지만 서울역은 결국 사람들을 거절하고 관리하는 단조로운 공간이 됐을 뿐이다. 역 앞 광장도 기차를 내리고 나와서 빨리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만드는, 자동차 우선의 공간이다.
철도는 먼 곳을 빠르게 이어준다. 하지만 철도는 또한 그것이 지나는 좌우 공간을 단절시켜 지역의 균형 발전을 저해하기도 한다. 지금의 서울역사는 그렇게 생겨난 동서 간의 오랜 단절을 해소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유럽에서는 철도로 분단된 도시 공간을 복합적 프로그램을 갖춘 대형 상업 건물을 통해 연결하려 하고 있다. 역사 건물은 철도로 나뉜 두 지역을 이어주고 활기를 되찾게 하는 ‘도시 커넥터’로 부각되고 있다.
서울시는 옛 서울역사의 북쪽 공간을 국제컨벤션센터와 복합문화공간을 갖춘 국제교류단지로 개발할 예정이다. 경부고속철도 2단계 건설이 마무리되고 인천국제공항철도가 서울역까지 이어질 2011년을 전후해 서울역을 국제도시 서울의 관문으로 부상시킨다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서울역이 지금과 같은 여러 건물의 단순 집합에서 벗어나 분단된 도시를 연결하는 커넥터로서 다양한 기능을 한데 모은 진정한 ‘도시의 얼굴’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⑦회는 김성홍 서울시립대 교수의 ‘서울 종로구 혜화동성당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