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이맛!]종로 피맛골에 남은 맛집들

  • 입력 2009년 8월 21일 02시 58분


빈대떡에 막걸리 한사발, 이젠 어디서…

서울 종로 교보빌딩 뒤 피맛골은 쑥대밭이다. 그 많던 맛 집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골목과 골목 사이에 숨어있던 작은 주막집들은 땅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서너 사람이 앉으면 꽉 차는 쪽방 카페에서, 기타 치며 목 놓아 노래 부르던 가객도 더는 보이지 않는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

‘슬프다/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모두 폐허다//나에게 왔던 사람들,/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모두 떠났다//…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그 누구도 걸어들어 온 적 없는 나의 폐허/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주는 바람뿐//아, 정말/어디로 숨어야/내 자신을 온전히 숨길 수 있을까, (황지우 ‘뼈아픈 후회’)

피맛골에 폐사지의 삼층 석탑 같은 맛 집들이 몇 곳 용케 남아있다. 건물은 뼈가 다 드러났고, 살은 누렇게 떴다. ‘계속 영업 중’이라는 플래카드가 안쓰럽다. 도대체 언제까지 영업이 가능할까. 그건 맛 집들이 세 들어 있는 건물주인과 피맛골 개발회사와의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일 것이다. 그들은 그 날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 때까지 영업을 계속 할 것이라고 말한다.

청일집(02-732-2626)은 1945년 광복과 더불어 문을 연 빈대떡 막걸리집이다. 지금도 2층 올라가는 계단은 당시 그대로이다. 너무 낡아 군데군데 받침대를 해놓은 것만 다르다. 광복 전 2층은 다다미방이었다.

주인 박정명 씨(68)는 청진동에서 태어나 자란 피맛골 토박이. 선대로부터 2대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족발과 파전도 함께 팔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대흐름에 따라 다양화한 것뿐이다. 본 메뉴는 누가 뭐래도 빈대떡과 막걸리. 빈대떡은 100% 녹두에 양파 양배추 대파 등을 다져넣어 불판에 돼지기름을 바르고 노릇노릇하게 부친다. 빈대떡 한 장에 1만 원. 바삭바삭하고 담백하다.

청일집 오른쪽 끝 구석자리는 2001년 손기정 선생(1912∼2002)이 황영조 선수와 함께 막걸리 잔을 기울였던 곳이고,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맨 앞자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1946∼2009)이 국회의원 시절 권양숙 여사와 함께 빈대떡을 맛있게 들었던 자리다.

안주인 임영신 씨(60)는 “동아 조선일보 등 언론인들과 소설가 시인 가수 배우 등 장안의 수많은 한량이 우리 집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1957년 집 앞을 흐르던 중학천이 복개되기 전에는 술꾼들이 지금 교보빌딩 쪽을 보고 나란히 서서 ‘쉬∼’를 하곤 했다. 가게 뒤쪽 골목에 화장실이 있었지만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막걸리에 금세 배가 불러 급하다 보니 그랬을 것이다. 마침 우리가 이곳을 떠나야 할 때 중학천이 청계천처럼 다시 열린다니 감개가 무량하다”고 말했다.

청일집은 인근 르메이르빌딩 1층에 새 가게를 얻어놓았다. 하지만 헐리기 전까지는 계속 이곳에서 영업을 할 예정이다. 64년 동안이나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던 이곳을 하루아침에 떠나기가 어디 그리 쉬울까.

열차집(02-734-2849)도 빈대떡 막걸리집이다. 청일집보다 역사는 덜하지만(1951년 서울 수복 이후 개업) 장안의 술꾼들에겐 더 귀에 익은 곳이다. 원래 중학천변 청일집 옆(두 집 건너)에서 시작했다. 가게가 집과 집 사이에 끼여 길쭉한 모양이다 보니, 손님들이 자연스레 ‘열차집’이라고 불렀고, 그것이 그대로 굳어졌다. 현 주인 우제운 씨(68)의 고모가 그 집을 인수해 운영하다가 1969년 지금 자리로 옮겨왔다. 우 씨는 1977년 고모로부터 가게를 이어받아 지금까지 32년 동안 바깥주인 윤해수 씨(69)와 함께 뒤를 잇고 있다. 윤 씨는 우 씨와 충남 청양의 한동네 소꿉친구. 열차집 빈대떡은 녹두 100%인 것은 청일집과 같지만 채소는 오직 양배추만 다져 넣는다. 굴젓은 통영 굴을 사흘 동안 숙성시킨 다음 고춧가루 등으로 양념해 내놓는다.

우 씨는 “1970년대 광화문은 늘 데모로 어수선해서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우리 집을 찾았던 사람들 중에는 나중에 유명해진 분도 많다. 그분들은 지금도 옛날처럼 수수하고 소탈하게 막걸리 한두 잔 기울이고 간다. 원래 우리 집은 그런 집이다. 이곳에서 자식들(1남 4녀)을 모두 대학 보내고 결혼까지 시켰다. 이젠 아들(윤상권 씨·41)이 가게를 꾸려가지만 막상 떠나야 한다니 막막하고 서운하다. 가야 할 곳을 아직 정하진 못했다. 앞으로 찾아봐야 하겠지만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는 가지 않을 생각이다”고 말했다.

우정식당(02-732-7553)은 갈치조림 전문 집. 주인 박경순 할머니(72)는 43년 동안 피맛골 일대에서 음식점을 해온 터줏대감. 본적도 청진동이다.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한 지는 10여 년. 박 할머니는 “이제 이곳이 마지막이다. 헐리면 그만 해야지 이 나이에 뭘 더 하겠나. 19평짜리 시영아파트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 혼자 말년을 보낼 참이다”고 말했다.

대림식당은 삼치 굴비 꽁치 고등어 등을 구워 파는 생선구이 전문 집. 아직도 이 집에 가면 고갈비를 맛볼 수 있다. 아직 어디로 갈지 정하지 않았다.

저녁 땅거미가 어둑어둑 내리면, 수컷들의 가슴에 헛헛함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발길마다 채는 그 밑도 끝도 없는 막막함의 소용돌이. 피맛골 빈대떡에 막걸리 한잔이 타는 목마름으로 다가온다. 술창 너머 보이는 뿌연 강호세상. 시작도 끝도 없는 적막강산. 피맛골 그 집들마저 모두 사라지고나면, 그들은 이제 어디로 가서 목을 축일까.

‘새우마냥 허리 오그리고/뉘엿뉘엿 저무는 황혼을/언덕너머 딸네 집에 가듯이/나도 인제는 잠이나 들까.//굽이굽이 등 굽은/근심의 언덕너머/골골이 뻗치는 시름의 잔주름뿐/저승에 갈 노자도 내겐 없느니.(서정주의 ‘저무는 황혼’ 부분)

김화성 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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