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매일 마주한 주검에서 생명의 경외감을 얻다

  • 입력 2009년 8월 22일 02시 58분


◇납관부(納棺夫) 일기/아오키 신몬 지음·조양욱 옮김/252쪽·1만 원·문학세계사

시신을 닦고 입관을 하는 장의사(납관부)의 일기를 바탕으로 쓴 에세이다. 매일 마주하는 주검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함으로써 삶과 죽음의 의미를 깨닫는 과정을 담았다.

단편소설로 등단한 작가였던 저자는 시인이나 화가들과 어울리느라 생업을 돌보지 않다 파산한다. 갓 태어난 아들의 분유 값을 마련하지 못할 지경이 되자 신문 구인난 광고를 보고 상조회사에 취직한다. 생(生)과 사(死)의 인연이 처음부터 함께였던 셈이다.

살기 위해 택한 일이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멸시와 외면이었다. 숙부는 집안의 장손이 그런 일이나 하느냐며 연을 끊겠다고 꾸짖었고, 아내는 ‘더럽다’며 잠자리를 피했다. 몇 번이나 일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때마나 ‘나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 알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생각에 고비를 넘겼다.

저자는 이윽고 자신도 시신에게서 눈을 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옛 연인의 아버지를 염습하면서 새로운 빛을 보게 된다. 땀을 흘리며 염을 하는 자신에게 조용히 다가와 땀을 닦아주던 옛 연인에게서 그는 경멸이나 서글픔, 동정 따위는 없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도 초월한 무언가를 느낀다.

자신의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받은 이후 저자는 죽은 이들을 바로 응시하기 시작한다. “싫은 일이지만 돈이 되니까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면, 그것이 어떤 일이든 세상의 경멸을 면하기 어려우리라.”

차에 치인 시신, 부패해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시신, 익사해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시신…. 여러 형태의 시신을 대하면서 저자는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성찰한다. 홀로 살던 노인의 시신에서 구더기를 쓸어내리다가 구더기들이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모습을 보면서 ‘구더기들도 빛의 생명’임을 느낀다. 교통사고로 어린 두 자녀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젊은 어머니의 시신을 입관하면서 그는 그 집 마당에서 실잠자리를 본다. 하찮은 미물도 배 속의 알을 통해 몇 억년의 생명을 연장시킨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죽음과 함께 놓인 생명에의 감동과 경외감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염습의 현장에서 본 빛은 죽음의 의미에서 어둠과 두려움을 지워내는 순간 얻을 수 있었던 깨달음이다. 저자는 “죽음이란 외면하거나 삶과 완전히 분리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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