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에 끝없는 오각형이 모여 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듯 피부 세포를 미시적으로 그린 고낙범의 ‘피부’는 기하학적 추상회화 같다. 미국 작가 앤디 라이언의 애니메이션 ‘Bare’는 곰을 통해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인간들을 꼬집는다. 젊은 여인의 얼굴을 감싼 주름진 손이 극적 대비를 이루는 스웨덴 작가 안네 올로프손의 사진은 섬뜩하다. 조소희는 거미줄처럼 흰색 실로 짜놓은 인체 설치작품을 통해 삶의 연약함과 소멸의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울트라 스킨’전은 몸의 가장 바깥에 위치한 피부의 맥락을 현대미술의 시각에서 풀어낸 전시다. 국내외 작가 18명의 회화, 영상, 사진, 설치작품은 피부가 갖는 개인적, 사회적 의미를 때론 유머를 담아, 때론 충격적으로 부각시킨다.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중국 작가 니하이펑과 프랑스 작가 니콜 트랑 바 방의 사진은 강렬하고 엽기적이다. 니하이펑은 자기 몸에 중국 도자기의 문양과 동인도 회사 무역선의 항해일지를 그린 뒤 사진을 찍는다. 서구로 이주한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작품이다. 니콜 트랑 바 방은 여인의 몸에 수를 놓은 합성사진을 통해 문신과 화장의 의미를 파고든다.
헬렌 켈러가 피부를 통해 의사소통을 배운 것처럼 피부는 사람들 사이에서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 소통의 수단으로도 기능한다. 호주 작가 필립 브로피의 애니메이션은 마주 보는 남녀가 서로 상대의 마음에 이르는 통로를 찾기 위해 간절히 노력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영국 작가 마커스 톰린슨은 초콜릿을 몸에 바른 남녀가 서로 몸을 쓰다듬는 영상을 통해 사랑하는 이와의 소통은 피부의 접촉이자 심리적 만남이란 것을 암시한다. 전시는 9월 30일까지. 02-547-9177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