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10개월만에 밀리언셀러 눈앞
다양한 이벤트-지역 독서운동 등이 큰 영향
한국 문학에서 오랜만의 밀리언셀러 탄생이 임박했다. 소설가 신경숙 씨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창비)가 9월 중순 100만 부를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교보문고, 예스24, 인터파크 등 온오프라인 대형서점이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집계해온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꾸준히 1, 2위를 고수한 지 10개월 만이다.
2000년 이후 가장 최근까지 밀리언셀러에 오르거나 근접했던 국내 문학서적으로는 2007년 100만 부를 돌파한 소설가 김훈의 ‘칼의 노래’, 현재까지 90만 부가 판매된 공지영 작가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이 있다. 이 작품들이 밀리언셀러가 되는 데 5년 이상이 걸린 것을 감안하면 ‘엄마를 부탁해’의 판매는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다. 올 상반기 문화계 전반을 달군 ‘엄마 신드롬’을 만들어내며 초고속으로 100만 부 대열에 다가선 ‘엄마를 부탁해’를 계기로 ‘밀리언셀러의 법칙’을 살펴봤다.
○ 독자와 함께…적극적인 이벤트
최근엔 과거와 달리 각종 문학행사, 이벤트를 통해 독자와의 소통 창구를 넓히는 것이 밀리언셀러를 만드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과거 홍보수단이 광고나 서평기사 등에 한정됐다면 이제는 직접 쫓아가서 감동을 주는 이벤트들이 훨씬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이벤트들은 입소문을 빠르고 멀리 확산시킨다.
‘엄마를 부탁해’의 경우도 적극적이었다. 출판사와 서점은 전국 곳곳에서 낭독회나 강연회, 독자리뷰 대회를 꾸준히 진행했다. 이벤트 방식도 다양해졌다. ‘엄마를 부탁해’는 작가와 독자가 영화 ‘워낭소리’를 관람하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북 콘서트 형식의 이벤트를 기획해 관심을 모았다.
○ 지역거점 책 읽기 운동의 힘
지방자치단체나 독서단체들을 중심으로 지역거점의 책 읽기 운동이 확산되면서 그 혜택을 보게 된 밀리언셀러도 늘었다. 1998년 미국 시애틀의 공공도서관을 중심으로 시작돼 2003년 국내에 소개된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은 최근 지자체들로 확산되면서 이 책들이 판매동력을 꾸준히 유지하는 데 도움이 주고 있다.
‘엄마를 부탁해’는 부산시, 울산시, 김해시, 청주시 등에서 올해의 도서로 선정됐다. 김해시 도서관정책팀의 차민경 씨는 “시에서 900여 권을 구입했으며 학교, 지역도서관을 중심으로 독후활동, 토론 등을 진행하고 있어 책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비야 씨가 2005년 펴낸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도 자치단체의 덕을 보았다. 순천시, 청주시 등에서 도시의 책으로 선정된 것이 80만 부까지 판매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 온라인 서점의 스타 작가 마케팅
검증된 스타 작가들과 온라인 서점의 영향력이 강해진 것도 이처럼 대형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 문학·에세이 분야에서 밀리언셀러를 낸 국내 작가는 박완서, 최인호, 김훈, 공지영 씨 등 소수로 한정돼 있다. 문학평론가 하응백 씨는 “검증된 대형 스타 작가를 온라인 서점들이 집중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이른 시간 안에 대형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역으로 우리 출판시장이 스타 작가에 지나치게 의존해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 소장은 “결국 밀리언셀러를 위해서는 출판사들이 스타 작가와 빅 타이틀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이라며 “이 점이 우리 출판시장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 불변의 법칙은 ‘타이밍’
그러나 변하지 않는 전통적인 베스트셀러 공식이 있다. 타이밍, 타이틀, 타깃, 탤런트, 타입, 토크, 토픽 등 이른바 ‘7T’. 이 가운데 시의성을 뜻하는 타이밍은 밀리언셀러를 만드는 데도 결정적인 요소다. ‘엄마를 부탁해’는 지난해 말 금융위기, 경기불황과 맞물리면서 독자들의 기본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가족서사로 힘을 발휘했다.
공지영 씨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은 2005년 13만 부가 판매됐지만 2006년 이 작품을 바탕으로 한 같은 이름의 영화가 개봉된 뒤 사형제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3개월간 30만 부 이상 팔렸다. 2001년 출간 직후 큰 반응이 없던 김훈 씨의 ‘칼의 노래’도 2004년 탄핵정국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읽은 책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 책은 그해에만 50만 부 가까이 팔리면서 밀리언셀러 고지에 다가설 수 있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