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영 MBC 사장이 26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업무보고에서 경영권 인사권에 대해 노조의 개입을 뒷받침해온 단체협약을 고치겠다고 밝힌 것은 노조의 비대한 권한이 MBC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을 인정하는 발언이다. MBC는 노조의 권한이 거세다는 의미에서 노영방송으로 불려왔으며 이로 인해 MBC 경영진이나 방문진의 경영과 방송정책에 대한 관리 감독권은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 “올바른 노사 관계 정립하겠다”
엄 사장은 이날 “노사 단체협약 사안 중에 (경영진의) 인사권 편성권에 침해 소지가 있는 조항들이 있는 게 사실이다. 이른 시간 내에 시정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고 방문진의 차기환 이사가 전했다.
이 단협에는 ‘편성·보도·제작상의 실무 책임과 권한은 관련 국실장에게 있다’(제21조)는 조항이 있다. 방송정책을 포함한 경영 전반에 책임을 지는 본부장들이 해당 본부가 방영하는 프로그램 등에 대해 아무런 책임과 권한을 갖지 못한 셈이다. 단협은 또 노사가 절반씩 참여하는 ‘공정방송협의회(공방협)’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 운영규정에는 ‘참석 과반수의 찬성으로 해당 국장의 변경을 요구하며 사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존중한다’는 조항이 있다. 이 조항으로 인해 노조는 사실상 해당 국장에 대한 인사에 개입할 수 있게 됐다. 노조는 이 단협을 통해 본부장을 배제하고 해당 국장의 인사권도 상당 부분 갖게 된 것이다. MBC의 한 간부는 “방송의 독립성을 지키겠다는 취지라고는 하지만 이런 조항 때문에 국장이 국원들의 눈치를 봐야 하고 그들의 눈에 벗어나면 자리를 지키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고 말했다.
○ “PD수첩 원본 공개하겠다”
이재갑 TV제작본부장은 PD수첩 광우병 관련 보고에서 ‘해당 원본테이프, 녹취록 등을 살펴봤냐’는 방문진 이사의 질문에 “자체 조사를 했으나 (원본테이프 등을 보는) 그런 조사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이사는 “(PD수첩 논란 당시) MBC가 작성했다는 자체 조사 보고서는 문제점을 지적한 언론 기사와 함께 PD수첩 제작진의 해명을 담은 내용뿐이었다”며 “방문진과 함께 진상조사를 할 의향이 있냐고 물어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고 전했다. MBC는 중대 소송이 벌어질 경우 이사회를 열어야 하지만 MBC는 기록할 필요가 없는 임원회의만 두 차례 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본부장은 또 원본테이프 등을 법원에 공개할 의사가 있냐는 질문에 “법원이 요구하면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광우병 보도 외 다른 주제를 다룬 PD수첩의 불균형 지적도 제기됐다. 한 이사는 “PD수첩의 지난 수년간 방영 내용을 보니 미국 관련 내용이 20개가 넘고 대부분 반미였다. 북한 인권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이 있냐고 물었으나 (본부장이)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