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푸드]새콤 달콤 매콤… 108가지 신비

  • 입력 2009년 8월 28일 02시 59분


‘새콤 달콤 매콤 오묘한 맛.’ ‘한번 손을 대기 시작하면 중독성이 강한 음식.’ 싱가포르 음식축제의 올해 주제인 페라나칸(Peranakan) 요리를 맛본 뒤 내린 결론이었다. 페라나칸은 17세기 말레이군도에 이주한 중국인 남성과 말레이 여성 사이에 태어난 자손을 이르는 말이다. 페라나칸 문화는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태국, 인도, 인도네시아 등의 영향도 받았다. 싱가포르는 동서양을 잇는 중개무역국가이자 다민족 사회다. 대부분 무역업에 종사한 페라나칸은 싱가포르 문화의 고갱이인 셈이다.

○ 세계의 주방 싱가포르 음식 축제

올 7월 17일부터 26일까지 열린 제 16회 싱가포르 음식 축제는 매년 4월경 열리는 세계 미식가대회(World Gourmet Summit)와 함께 ‘음식의 천국’, ‘세계의 주방’ 이란 별칭을 싱가포르에 안겨주었다.

25일 밤 페라나칸 박물관에서 열린 ‘미녀와 야수 만찬’은 10명의 요리사가 대표 음식을 차려놓은 뷔페식으로 열렸다. 애피타이저인 ‘쿠에 파이 티(Kueh Pie Tee)’는 긴 여운을 남겼다. 밀가루 과자 컵 속에 당근, 야채, 칠리소스 등을 채우고 그 위에 새우 살을 얹은 귀여운 모습이다. 입안 가득히 퍼지는 담백한 맛에 육즙과 바삭함이 입맛을 돋웠다.

페라나칸 요리의 대표 주자격인 ‘락사(Laksa)’는 도전 정신을 북돋았다. 싱가포르인의 애호 음식이지만 외국인의 반응은 극과 극이란다. 코코넛밀크에 쌀 국수를 말았다. 여기에 허브, 어묵, 새우, 새조개 등을 곁들인다. 서울의 한 특급호텔이 싱가포르 요리 축제를 했는데 락사가 금방 동이 났다는 말에 용기를 냈다. 새콤 달콤 매콤한 맛이 어우러지며 고소한 맛까지 났다. 코코넛밀크의 느끼한 맛을 페라나칸 칠리소스로 상쇄할 수 있었다.

화려한 실크 원단에 섬세한 자수가 놓인 ‘논야 케바야’란 상의와 ‘사롱’이라 불리는 치마를 입은 여성들의 패션쇼는 눈도 즐겁게 했다.

○ 천연재료 쓰고 기름 사용 안하는 건강식

다음 날인 26일 열린 요리 교실은 페라나칸 음식의 비밀을 풀어준 열쇠였다. 싱가포르 음식대사인 바이올렛 운 씨(60·여)는 “페라나칸 요리는 기름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가까운 곳에서 나는 천연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건강식”이라고 설명했다. 대부분 천연재료를 사용하다 보니 조리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다. 페라나칸 칠리소스를 만드는 과정을 보니 이해가 갔다.

그녀는 빨간 고추를 작은 돌절구에 넣고 갈았다. 마치 한국 여인네의 모습 같았다. 그 다음 새우가루 페이스트를 프라이팬에 기름을 치지 않고 고소한 냄새가 날 때까지 볶아서 미리 갈아 놓은 고추에 섞고 방울토마토 크기의 싱가포르산 레몬 즙을 짜서 넣었다. 이 맛 역시 새콤 달콤 매콤했다. 이 소스를 자주 사용하는 페라나칸 음식에서 5미(味) 가운데 짠맛과 쓴맛은 찾기 힘들다.

운 씨는 ‘아얌 부아 켈루악(Ayam Buah Keluak)’의 조리법도 가르쳐 줬다. 닭고기에 강황, 인도네시안 블랙 너트를 넣고 새콤한 그레비 소스(토마토 페이스트, 월계수 잎, 통후추, 소금 등으로 만든 소스)로 끓여낸 음식으로 싱가포르식 닭볶음탕이라고 해야 할까. 페라나칸 요리는 새콤 달콤 매콤한 맛의 비율이 각기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밥에 비며 먹으면 맛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날 밤 클라크 키(Clarke Quay)의 리드 브리지에선 롱기스트 페라나칸 뷔페가 열렸다. 50m 길이의 다리 양쪽에 늘어선 30개 음식대에 108가지 요리가 올려져 있었다. 다리 위에서 맛본 ‘미 시암(Mee Siam)’이란 국수는 얼큰해 한국인의 입맛에 맞았다. 뚝뚝 끊어지는 버미셀리 면에 숙주, 달걀, 말린 두부, 카레 등을 넣고 끓인 요리다. 이 축제는 끝났지만 싱가포르에선 언제든 페라나칸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싱가포르관광청이 발행한 ‘페라나칸 경험’(The Peranakan Experience)이란 팸플릿엔 페라나칸 음식점 10여 곳이 나와 있다.

상하(常夏)의 나라를 돌아다니다 피곤이 몰려올 때쯤 늦은 점심을 겸해 ‘하이 티’를 즐기면 좋다. 영국식 문화다. 지난해 4월 동남아시아에선 최초로 싱가포르에 문을 연 6성급 세인트 리지스 호텔 1층의 레 사뵈르는 여성의 감성을 자극할 만한 하이 티를 제공한다. 쾌적한 분위기에서 화려한 디저트를 한입 베어 물고 티를 마시면 전통을 보존하면서도 국제성을 과시하는 싱가포르의 단면이 눈에 들어온다.

○ 여행정보

▽싱가포르 정보=싱가포르 관광청(visitsingapore.com) 홈페이지 참조. 9월엔 자동차경주대회(Formula 1), 10월엔 태양 축제 등 매달 축제가 열림. ▽항공로=싱가포르, 아시아나, 대한항공에서 매일 직항 운항. 비행시간은 6시간 30분. ▽에어텔 패키지=싱가포르항공은 항공, 숙박, 주요 관광지 운행 시아 홉 온 버스 탑승권이 포함된 시아 홀리데이 상품 판매. www.singaporeair.com/kr 02-755-1226

싱가포르=하준우 기자 hawo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