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 시에 야간자율학습이 끝났다. 귀갓길은 별들로 경이로웠다. 윤동주 시인처럼 별 하나에 사랑하는 이나 희망을 하나씩 연결지으며, 별을 세고는 했다. 너무 많아 결국에는 그만 셀 수밖에 없는 별들. 밤하늘의 무한하고 찬란한 지도는, 한계가 없고 영광만 가득한 미래처럼 보였다.
지방대학교는 산에 있었다. 별은 인색했다. 지독한 안개 때문이었다. 세계를 알면 알수록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별천지가 머리 꼭대기에 있건만, 시야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강력한 안개! 그래도 가끔 별들이 안개를 뚫고 진면목을 보이는 날이 있었다. 변화무쌍하고 다종다양한 별들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천국을 부러워했다. 가끔 떨어지는 별똥별은 하나의 죽음일 텐데, 그 죽음이 멋있어 보였다. 멋지게 살다가 폼나게 스러져가는 듯해서.
서울은 별보기가 어려웠다. 안개보다 더 잔인한 스모그 때문일까. 스모그보다 더 가혹한 ‘지방 촌놈의 서울 생존투쟁’ 때문에 한 치 앞만 보도록 좁아져버린 시야 때문일까. 신자유는커녕 구자유도 없고, 글로벌하지도 못하고, 썩은 고기에나 집착하는 하이에나였다! 어쩌다 보이는 별들도 곧 사라질 것처럼 처참하게만 보였다. 고향 시골은 여전히 아홉 시 뉴스가 끝나기도 전에 별들로 만개했으나, 서울에서 자리 잡지 못한 청춘의 눈에는 더는 찬란한 미래의 지도가 아니었다. 내 몸뚱이 하나 쑤셔 넣을 틈도 없는 지뢰밭의 지도였다.
그렇게 별을 모르고 살았다. 내 눈에 뵈는 게 없으니, 없는 것이었다. 지난겨울 유조선을 탔다. 이십 일 동안 서해에서 아라비아해까지 항해했다. 낮에는 물의 바다를 보았고, 밤에는 별의 바다를 보았다. 하나둘 깨어나고 무리지어 반짝반짝쇼를 벌이고 달빛에 흐릿해지고 달의 반대편에서 은하수를 저어가는, 별들의 일상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내가 잊어버린 줄 알았던 내 마음속의 별들도 하나둘 깨어났다. 바다에서 깨어난 별들은 아직도 내 가슴속에서 빛나고 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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