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가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54세 때인 1935년. 피카소가 첫 번째 부인 올가 코클로바와 이혼하며 심경의 변화를 겪었던 때다. 이혼 이후 피카소는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피카소는 평생 3편의 희곡과 400여 편의 시를 남겼다. 2005년 프랑스에서 나온 시선집을 번역한 이 책에는 1935년 10월 28일부터 1954년 10월 18일까지 쓴 100여 편의 시가 실려 있다. 각각의 시에는 제목이 없이 쓴 날짜만 적혀있다.
피카소의 시는 그림만큼이나 실험적이다. 그는 구두점도 없이 단어를 나열해 문장을 구성했다. '…그것은 바다에 웃음 조개껍질 마시고 싶은 비단향꽃무우 색 씨앗 검둥이 잠두콩 창유리 침묵 석반 초록 어릿광대 화관…' (1936년 4월 9일)
화가답게 그림에 관련된 어휘가 다수 등장한다. '캔버스는 심장에 박힌/올이 성긴 어망/빛을 발하는 거품들은/눈을 통해 목구멍에 걸리고/재촉하는 채찍질에/그의 사각형 욕망의 주위에서/퍼덕이는 날개' (1936년 1월 4일).
시의 주제에서는 조국 스페인에 대한 애증이 묻어난다. 투우, 플라멩고, 마드리드의 밤 등이 자주 나오고, 프랑코 정권의 독재에 관한 공포를 '못 스프', '소스를 뿌려 익힌 강철 채소' 등 못 먹는 음식으로 표현했다.
피카소의 어록에는 '단어로 그림을 쓸 수 있고 시에 느낌을 그려 낼 수도 있으니 어쨌거나 모든 예술은 하나다'라고 적혀있다. 그는 시를 예술을 구현하기 위한 또 다른 도구로 활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프랑스의 문학평론가 앙드룰라 미카엘은 해설을 통해 피카소의 시에 대한 열정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놀랍도록 다채로운 이 시들은 피상적인 독서로는 이해할 수 없다. 글쓰기란 피카소에게 취미가 아닌 그가 모든 열정을 바친 활동임에 틀림없다."
민병선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