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子路(자로)’편에서 樊遲라는 제자가 농사짓는 법이나 채소 가꾸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자 공자는 완곡하게 거절했다. 논어 전체에서 이처럼 기이한 대화가 있을까. 공자는 공자 스스로 “나는 젊은 시절 미천했으므로 비루한 일에 많이 능하다”라고 했으므로 농사에도 밝았을 것이다. 또 공자의 학당에서는 정치에서 농사를 本務(본무)로 삼았다. 그렇거늘 공자가 번지를 나무란 이유는 무엇인가.
樊遲는 이름이 須(수)로, ‘顔淵(안연)’편에서 仁은 愛人(애인), 知는 知人(지인)이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들은 인물이다. 學稼의 稼는 벼 메기장 기장 보리 콩 등 五穀(오곡)을 심는 일을 말한다. 不如는 ‘∼이 ∼보다 못하다’는 열등비교를 나타낸다. 爲圃는 밭을 가꿔 야채 기르는 일을 말한다.
번지의 질문이 돌연한 듯해서 후대의 해석가는 그를 어리석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성호 이익은 번지가 ‘맹자’에 나오는 許行(허행)처럼 직접 노동을 하면서 정치를 해야 한다고 보는 설을 대변했다고 여겼다. 정약용도 번지는 后稷(후직)이 농사지으면서 천하를 다스렸다는 神農氏說(신농씨설)에 따라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보는 관점을 지녔다고 보았다. 그런데 공자는 그 관점이 食貨(식화)만 앞세우고 禮義(예의)를 뒤로 하는 폐단을 초래할까봐 꾸짖었다는 것이다.
번지는 올바른 도가 실행되지 못하자 농사일로 사방 백성이 찾아오게 하면 좋으리라 여겼을 것이다. 오늘날 많은 분이 歸農(귀농)하는 것도 세상의 혼란상에 염증을 느끼기 때문이 아닌가.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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