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이맛!]날로 먹고 구워도 먹는 ‘참깨’… 전어

  • 입력 2009년 9월 4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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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어구이는 숭숭 칼집을 내어 막소금을 뿌리고 노릇노릇 구워낸 것이 일품이요, 전어회는 나박나박 썬 다음 배와 무생채, 풋고추와 미나리채를 무침으로 버무린 것이 최상의 맛이다. 달보드레하고 달짝지근하고 고솜한 맛이, 또는 혀끝이 얼얼하고 상큼한 맛이 다른 음식에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별미다. 하지만 전어구이나 전어회보다 달보드레하고 쌉싸래한 맛을 내는 것이 밤젓이다. 밤젓이란 전어창자 중에서 밤톨(돌기)만을 따내어 젓갈을 담근 것을 말한다. 전어창자로 담근 것은 돔배젓이다. 밤젓 한 숟가락을 듬뿍 떠 햅쌀밥에 비비면 혀에 감치는 그 그로테스크한 맛이라니! ‘서울 사람들, 돔배젓은 알아도 밤젓은 모른다’는 말은 쉬쉬하며 떠도는 남도의 식담이다.” <‘시인 송수권의 풍류 맛 기행’에서>

가을이 쳐들어왔다. 전어 떼가 돌아왔다. 머리에 깨 서 말을 가득 채워 펄떡펄떡 뛰어왔다. 봄 도다리(주꾸미), 여름 민어, 가을 전어, 겨울 숭어…. 붉은 배롱나무꽃잎이 땅바닥에 낭자하게 떨어지면, 전어 살집이 통통하게 오르기 시작한다. 코스모스 꽃이 한들거리면, 몸통에 기름이 자르르 흐른다. 골목마다 전어 굽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집 나갔던 며느리가 못 잊어 돌아온다는 바로 그 냄새다.

전어는 남해안 서해안 연안에서 잡힌다. 주로 얕은 바다에서 논다. 플랑크톤 등 각종 유기물이 많은 강 하구를 좋아한다. 산란기는 4∼5월. 알을 낳고 나면 몸이 푸석하다. ‘봄 전어는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이 나온 이유다. 하지만 가을엔 내년 봄 산란을 위해 다시 열심히 먹는다. 오동통 살이 찐다. 지방이 봄의 3배가 넘는다. 한마디로 회로 먹든, 구워 먹든 고소하다. 깨소금 맛이다.

전어구이는 우선 전어 몸통에 2cm 간격으로 칼집을 낸다. 그 다음엔 굵은 소금을 뿌린 뒤 1시간 정도 재워둔다. 그것을 석쇠에 노릇노릇 구워 먹으면 된다. 좀 재워둬야 비린내가 안 난다.

전어회는 뼈째 두께두께 어슷하게 썬 뒤 초고추장에 찍어먹으면 된다. 상추에 미나리 풋고추 등과 함께 싸서 먹으면 더 맛있다. 배채 무채 미나리 양배추 양파 깻잎 등 야채와 함께 무쳐 먹으면 전어회 무침이다. 오도독오도독 씹히는 맛이 그만이다. 뼈가 굵으면 씹기가 힘들다. 크기가 15cm쯤 되는 게 뼈도 부드럽고 맛도 좋다. 자연산 전어는 9월 중순 무렵에 잡힌 것이 알맞다. 양식전어는 아예 적당하게 키워 시장에 낸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남서해 곳곳에선 전어축제가 열린다. 부산 마산 삼천포 광양 장흥 부안 서천 등에서 전어 썰기, 전어 굽기 등 각종 이벤트가 펼쳐진다. 요즘엔 물탱크에 산 전어를 가득 채운 활어차가 동네 골목까지 돌며 팔기도 한다. 활어차에서 파는 전어는 자연산이 드물다. 서울에선 가락농수산시장이나 노량진수산시장에서 활어를 살 수도 있다.

살찐 전어는 양식일 가능성이 크다. 양식 전어는 살집이 지나치게 붙었다. 뱃살 라인이 약간 처졌다. 자연산 전어는 배가 사슴처럼 날씬하다. 기름기도 양식보다 많지 않지만 고소하다. 자연산 전어가 깨가 서 말이라면, 양식 전어는 깨가 한 말 정도나 될까? 전어를 노릇하게 구운 뒤 머리를 덥석 물어 그 즙을 핥아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한자로 전어(錢魚)의 ‘전(錢)’자는 돈(엽전)을 뜻한다. 조선후기 서유구의 책 ‘임원경제지’에 보면 ‘전어는 기름이 많고 맛이 좋아 상인들이 염장해서 파는데, 귀족 천민을 가리지 않고 돈 아까운 줄을 몰랐다. 그래서 ‘전어(錢魚)라고 했다’고 나와 있다. 이때 전어는 전어회나 전어구이가 아니라 소금에 절인 자반전어나 전어속젓 혹은 전어창자로 담근 돔배젓일 것이다.

전어새끼는 전어사리라고 부른다. 전어사리로 담근 젓이 엽삭젓(뒈미젓)이다. 전어내장을 모아 담근 젓은 전어 속젓이다. 안도현 시인이 ‘쓰디 쓴 눈송이만 한 어둔 내장(內臟) 한 송이를 남겨 놓으니 이것으로 담근 젓을 전어속젓이라고 부른다’라고 말한 그 젓갈이다.

조선시대 돈은 엽전이다. 엽전은 겉이 둥글둥글하고, 가운데 구멍은 네모나다. 전어도 몸통은 둥글지만, 지느러미나 꼬리는 각지다. 크기도 크지 않다. 전체적인 이미지가 엽전하고 닮은꼴이다. 이를 근거로 일부에선 전어라는 이름이 조선시대 엽전에서 유래됐다고 주장한다. 어쨌거나 전어는 잔가시가 엄청나게 많지만 살집은 고소하고 달다. 돈도 벌 때는 각지게 악착같이 모아야 하지만, 쓸 때는 둥글게 정승같이 써야 한다.

일본에선 전어를 ‘고노시로’라고 부른다. 초밥에 많이 쓰지만, 가시가 많아서인지 구워 먹는 것은 썩 즐기지 않는다. 뼈째 썰어 먹는 회는 더욱 그렇다. 일본인들에게 ‘뼈있는 회’는 거북스럽다. 회를 ‘뼈째 썰어, 오도독 오도독 잘도 씹어 먹는’ 한국인들은 정말 유별나다.

‘전어 한 쌈에/달빛 한 쌈/작년에 떠났던 가을/파도에 실려 돌아오네/가족들 모두 병이 없으니/떠난 것들 생각에 밤이 깊어도 좋으리/창 밖에/먼 곳 풀벌레 가까이 다가오누나’ <윤상운의 ‘전어와 달빛’>

가을에 전어를 못 먹으면 한겨울에도 가슴 시리다던가. 어느 여름날, 나이 일흔에 죽을 날만 기다리던 노인이 ‘죽는 것은 괜찮지만, 올가을 전어 맛을 못 보고 죽는 게 억울하다’고 했다는 우스갯말까지 있다.

가을이 되면 대한민국은 ‘전어깨밭’이 된다. 이 골목 저 골목, 이 아파트 저 아파트에서 전어 굽는 냄새가 하늘을 찌른다. 누렁이의 반질반질한 코가 연방 벌름거린다. 남해바다가 통째로 구워지고 있다. 서해바다가 노릇노릇 석양에 익고 있다. 또 한 해가 저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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