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해외보급 1세대들의 고생담은 익히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일본 가라테의 텃세가 심했다. 가라테를 밑바탕으로 한 일본인들의 이민 역사는 한국에 비해 80년이나 앞서 있었다. 태권도가 뿌리를 내릴 한 줌의 토양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맞붙는 거죠. 격투를 벌이는 겁니다. 남미 사람들이 투우를 하잖아요. 칼로 소를 찌르고, 이를 보면서 환호하고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 아닙니까.”
아르헨티나 군정 시절. 태권도를 알리러 왔다니 “그렇다면 우리들 보는 앞에서 당신들끼리 붙어 봐” 하고 나왔다. 물러설 수 없었다. 꼬리를 내리는 쪽이 지는 게임이었다.
“도복이 피바다가 됐죠. 그렇게 해서 인정을 받았어요. 저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 간 사범들도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가라테의 벽은 그렇게 우리들 세대가 맨주먹으로 뚫은 겁니다.”
공명규(49)씨가 자신의 손을 보여 주었다. 탱고 마에스트로의 손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투박하고 거칠다. 여기저기 상처가 있고, 그나마 손가락 하나는 뒤로 휙 휘어져 나갔다.
수련생은 늘어났지만 공씨 본인 말로 빛 좋은 개살구였다. 장사를 하는 교포들은 그럭저럭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아갔지만 태권도 사범은 늘 쪼들렸다.
“현지인들 앞에서 검은 띠 매고 큰 소리만 치는 거죠. 도장에 태극기를 걸어 놓은 마당에 돈 되는 일이라고 해도 좀 체면이 안 선다 싶으면 섣불리 못 하게 됩니다. 게다가 장사는 하루 12시간 이상씩 해도 되지만 우린 4시간이면 끝입니다. 기껏 벌어서 집세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어요.”
살인적인 인플레도 골칫거리였다. 한 달 치 수련비를 미리 받아 놔 봐야 자고 나면 50%씩 물가가 뛰어 버렸다.
공씨는 골프로 눈을 돌렸다. 현지 육군사관학교 교관 시절 이런저런 이유로 배워두었던 골프였다. 밤이 되면 체육관으로 돌아와 혼자 골프를 연습했다. 현지인들과 맞붙어 생존하려면 무조건 1등을 해야 했다. 실력으로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는’ 냉엄한 세계였다.
아르헨티나에서 PGA 프로골퍼(동양인 최초였다)로 승승장구 하던 공씨는 현재 탱고의 거장이 되었다. 아르헨티나 정부로부터 탱고 홍보대사로도 위촉받았다.
탱고 얘기가 나오자 공씨의 목소리 톤이 달라졌다. 거침이 없고 격정적인 말의 폭포가 쏟아졌다.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담고 있었던 모양이다.
“탱고의 원래 발음은 ‘땅고’죠. 일본이 땅고 문화로 매출을 얼마나 올리는지 아세요? 아르헨티나에서 일본사람 하면 ‘동양의 신’으로 압니다.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전 세계에서 땅고를 퇴폐문화 취급하는 건 우리나라밖에 없어요.”
탱고에 대한 오해 하나. 탱고를 아르헨티나의 전통춤으로 오인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씨는 그게 아니라고 했다. 백 여 년 전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전 세계로부터 이민자들이 몰려들었다. 배를 타고 수 개 월씩 걸려 낯선 나라에 도착한 이민자들은 애환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삶이 각박해졌다.
“각 나라 대표들이 모여서 ‘이왕 우리가 이 나라에 왔으니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보자’해서 탄생하게 된 것이 탱고입니다. 말이 안 통하니 손을 잡고, 춤을 춘 거지요.”
탱고는 경쾌한 2박자 계열의 음악이지만 어딘지 애절한 느낌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국땅에서 낯선 이들과 부대끼며 살다 결국 이 자리에 묻혀야 하는 이민자들의 애환과 아픔, 눈물이 절절히 배어있는 탓이다.
“아르헨티나에서 하지만 탱고는 아르헨티나의 것이 아닙니다. 세계인의 것이지요. 탱고를 출 때 반주를 하는 반도네온이란 악기도 독일 겁니다. 독일 이민자가 들고 온 거죠.”
공씨는 ‘탱고는 국력’이라고 잘라 말했다. 국력이 약한 나라는 탱고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문화의 힘이다.
1997년 공씨는 탱고 무용수들과 함께 고국을 찾았다. 아르헨티나에 태권도를 알렸듯, 조국에 탱고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스폰서 계약도 없이 김포공항에 내렸는데, 딱 IMF에 걸리고 말았다. 한국의 친지들조차 “공명규가 여자하고 춤이나 추고 다닌다”며 외면했다.
10년 만인 2007년. 공씨는 ‘피버탱고’라는 이름으로 다시 내한했다. 이번엔 대성공이었다. 열정과 관능의 탱고에 한국의 관중들이 눈을 씻고 귀를 후볐다.
“유럽에서는 볼룸댄스가 있죠. 훌륭하게 잘 하고 있지만 탱고를 경계할 수도 있어요. 탱고의 아름다움을 그들은 결코 창출할 수 없으니까요.”
공씨가 가방에서 누렇게 바랜 책자와 악보들을 꺼내더니 보물이라도 되는 냥 조심스럽게 내보였다. 100년이 넘은 것들이었다.
“이게 탱고입니다. 탱고는 춤만 있는 게 아닙니다. 작품마다 다 가사가 있고, 악보가 있어요. 우리들은 춤을 추기 전에 이 가사를 다 외웁니다. 그리고 가사의 내용을 음악에 맞춰 몸으로 표현하는 거지요.”
공씨가 보여 준 악보 중 하나는 저 유명한 ‘라 쿰파르시타’. 1915년경에 작곡된 것으로 탱고의 대명사격인 곡이다. 영화나 TV 프로그램에서 ‘탱고’하면 으레 이 곡이 연주된다. 남자가 입에 장미를 물고 여자와 추는 장면을 많이들 보셨으리라.
“그런데 이거 아세요? 라 쿰파르시타가 ‘가장행렬’이란 뜻인데, 이게 장례 행렬이에요. 아주 엄숙하고 슬픈 곡이죠. 그런데 장미 한 송이 입에 물고 머리만 홱홱 흔들어대면 그만입니까? 장미는 뭐냐고요? 장례식 가면 관을 향해 조문객들이 장미를 던지잖아요. 지금 이 순간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보고 탱고라고 여깁니다. 정형화 되어 가는 거예요. 다 가짜인데.”
탱고의 악보에는 가사가 적혀 있지 않다. 악보는 악보대로, 가사집은 가사집대로 존재한다. 이게 다 모여서 탱고가 된다.
안무도 정해진 것이 없다. 가사를 연구해 그 정서를 안무가가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 놀라운 것은 탱고 스텝을 알면 세계 그 어떤 음악이라도 탱고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공씨는 “일단 한 번 보라”며 파트너의 손을 이끌고 스튜디오 한 가운데로 나갔다. 음악이 흐른다. 탱고곡이 아닌 귀에 익숙한 팝송이었다. 공씨는 팝에 맞춰 파트너 가르시아 사브리나씨와 우아하면서도 정열적인 탱고스텝을 보여 주었다. 일년 신은 구두처럼 익숙하기만 하다. 미리 얘기해주지 않았더라면 오래도록 두 사람이 이 곡에 맞춰 탱고를 연습해 온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이런 능력은 전 세계를 통틀어 봐도 탱고밖에 없습니다. 이게 무서운 거예요. 오늘 굉장히 중요한 걸 보신 겁니다.”
공씨가 이끄는 아르헨티나 탱고팀은 9월 2일부터 13일까지 서울 한전센터에서 ‘피버탱고2’란 타이틀로 공연을 한다. 이후 9월 25일부터 27일까지는 고양시 아람누리 아람극장으로 자리를 옮겨 공연한다.
“나이로 보나, 체력으로 보나 이번이 마지막일 겁니다. 탱고를 춘다는 것은 내게 있어 세상과의 격투입니다. 도복 대신 의상을 입고, 링이 아닌 무대에서 나는 싸웁니다. 그렇게 해서 탱고가 조국에 남을 수 있다면, 나의 오랜 싸움은 승리로 끝날 수 있을 겁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사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화보]‘열정을 춤추는 남자’ 탱고 마에스트로 공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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