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 속 구상… 울타리를 부수다

  • 입력 2009년 9월 8일 02시 56분


한국적 표현주의 모색 이강소 씨
서울-파주서 대규모 작품전

추상 속에 구상 이미지가 살짝 포개져 있다. 추상표현주의를 연상시키는 붓자국이 종횡무진 오가는 캔버스에서 문인화의 여백과 철학이 감지된다.

서로 다른 세계를 혼융해 한국 특유의 표현적 회화의 가능성을 모색해온 이강소 씨(66)의 폭넓은 작업을 조명하는 전시가 두 곳서 열리고 있다.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 현대 본관과 신관(02-2287-3500)에선 회화, 입체와 사진을 선보인다. 분황사를 주제로 한 설치작업 등은 경기 파주시 예술마을 헤이리 공간 퍼플(031-956-8600)에서 전시 중이다.

갤러리 현대의 ‘이강소 1989∼2009’전의 경우 20년간 그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회고전 성격을 지닌다. 1973년 첫 개인전에서 막걸리 주점을 여는 전위적 퍼포먼스를 펼친 작가는 회화 판화 입체 비디오 퍼포먼스 등 장르를 넘나들며 쉼 없는 도전을 한 뒤 1980년대 중반 평면에 다시 집중한다.

평면이 사이버 공간만큼 자유롭고 풍요한 가능성으로 가득 찬 공간임을 인식한 작가는 오리와 사슴, 배의 이미지가 담긴 무채색톤의 기존 작품과 함께 ‘becoming’ ‘emptyness’ 시리즈를 내놓았다. 근작에서 오리의 형태는 희미해지고 물살을 헤엄치기보다 고요한 명상에 빠진 것 같다. 술렁거리는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리는 절제된 조형언어와 더 깊어진 사유가 느껴진다.

“그림 속 오리는 이미지의 묘사가 아니라 차용한 것이다. 그저 멍석을 펼쳤으니 보는 사람이 감각을 일깨워 마음대로 상상력을 펴고 즐기라는 뜻이다. 그 가벼움이 내 작업이다.”

청록색 등 은은한 색상이 보태진 것도 변화. 그는 “살아있는 이 시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림과 함께 서로에게 기대어 관계를 만드는 세라믹 입체 작품, 사람이 많이 스쳐지나간 자리와 시간이 오래 중첩된 곳을 주목한 사진도 볼 수 있다.

“기존 예술이 존재를 증명하려는 것이라면 나는 존재를 입증하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존재란 자체가 틀린 말이다. 멈춰 있어야 존재인데….”

결국 그의 모든 작업은 “삶과 세계는 늘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변화와 불안정성을 받아들이게 하는 과정의 기록인 셈이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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