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그런데 가끔 미국에 사는 친구한테 ‘너 지금 여기 TV에 나오고 있어’라고 전화가 와요.(웃음)”
올해 초부터 영어방송 아리랑TV의 연예뉴스 ‘쇼비즈 엑스트라’를 진행하고 있는 프랑스인 아드리앙 리(26)는 한국 시청자들에게는 낯선 얼굴이다. 하지만 그는 아리랑TV 외에도 KBS 월드 라디오에서 프랑스어로 한국 대중음악을 소개하는 ‘뮈지크 코레엔느’를 진행하면서 해외에서 한국의 외국어 방송을 접하는 이들에게는 꽤 알려졌다.
188개국에 방송되는 ‘쇼비즈 엑스트라’ 게시판에는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미국 등에서 ‘이번에 새로 나온 그룹 에프엑스가 궁금하다’ ‘이영애의 결혼 소식을 전해 달라’를 비롯해 시청자 글이 매일 10여 건씩 올라온다. 해외 시청자들이 그의 방송을 통해 한류를 접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프랑스 엘리트 교육기관인 그랑제콜의 폴리테크니크 그르노블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다. 한국 이름은 이준. 2007년에는 KAIST 경영전문대학원(MBA)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했고 2006년과 2007년 여름에는 각각 국내 존슨컨트롤즈와 르노삼성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그는 지난해 봄 그랑제콜을 졸업한 뒤 여름부터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아버지가 한국인이라 프랑스에 살면서도 방학 때마다 한국에 들어왔고, 어려서부터 한국 방송 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한국은 닫혀 있다가 점점 글로벌화되는 나라인 만큼, 저와 같은 사람(혼혈)이 한국 방송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한국에서 KAIST 교환학생으로 있을 때에도 모델 제의가 들어왔지만 그랑제콜을 졸업하려면 공부할 게 많아 졸업 이후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며 “앞으로 한국에 살면서 MC, 연기자, 모델 등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다”고 말했다. 아드리앙은 지난달 KBS2 ‘미녀들의 수다’ 특집방송에 출연해 수려한 외모와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선보인 뒤 국내 인지도도 높아지고 있다.
그는 “쇼비즈 엑스트라 게시판을 보면 해외 팬들은 한국 연예인에 대해 ‘너무 좋다’는 반응을 보인다”며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다이내믹이 한류의 비결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 유럽에서까지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한국은 연예인을 키워주고 만들어주는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있고, 어렸을 때 가수로 활동하다가 나중에 커서 평범한 회사원이 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한 번 가수가 되면 프로페셔널한 직업인으로, 평생 ‘노래 전문가’로 남아요. 10대 아이돌 스타도 없습니다. 그만큼 프랑스 사람들이 까다로워서 한국 대중문화가 프랑스에서 인기를 끌려면 ‘브랜드’ 전략을 잘 짜야 합니다.”
아드리앙은 영어 한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 5개 언어가 가능하고 ‘싱글’ 수준의 골프 실력을 갖췄다. 그에게 “엄친아(엄마 친구의 아들) 같다는 이야기 많이 듣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못 들어봤다”고 웃었다.
아드리앙의 아버지는 국가대표 테니스 선수였던 이승근 씨. 1980년 연세대 체육학과 학생이던 이 씨는 연세대 불문과 교수로 온 프랑스인 마르탱 프로스트 씨에게 테니스를 가르쳐주다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프로스트 씨는 올해 초 서울대 교환교수로 한 학기를 근무한 뒤 현재 파리7대학의 한국학과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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