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사동 신석기 유적-개성 만월대 등
고고학 발굴현장 27곳의 일화 소개
475년 9월, 고구려 3만 군사가 백제 수도 한성의 북성과 남성을 포위했다. 백제 개로왕은 성문 밖으로 급히 도망쳤다. 고구려에 망명한 백제 출신 장수 재증걸루가 개로왕을 잡았다. 그는 왕에게 절한 뒤 얼굴에 침을 세 번 뱉으며 비겁함을 꾸짖었다. 그 뒤 아차산성으로 데려가 처형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책은 최근 30년 동안의 굵직한 발굴 현장 27곳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각 장에는 발굴 당시 현장을 지킨 고고학자가 직접 발굴의 의미와 일화, 뒷이야기를 소개한다. 때론 공사 현장에 몰래 잠입해, 때론 붕괴나 추락의 위험을 무릅쓰고 땅을 팠던 기록이다. 저자 중 한 명인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머리말에서 그토록 ‘사서 고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역사서는 기록된 내용이 턱없이 부족하고, 때로는 진위를 확인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땅속에서 나온 고고학 자료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매장문화재 발굴은 현재와 과거의 구체적인 대화를 가능하게 해줍니다.”
2004년 봄 경남 창녕군 비봉리 신석기 유물을 발굴하던 임학종 국립김해박물관장은 똥 화석 한 점을 발굴했다. 국내에서는 처음이었다. 분석 결과 당시 신석기인들이 섭취한 음식물은 물론 기생충도 밝힐 수 있었다. 그 뒤로 발굴 팀은 똥 찾기에 매달렸다. 발굴 현장의 아침인사는 “똥 찾았어요?”가 됐다.
서울 강동구 암사동 신석기 유적은 1925년 대홍수 덕분에 발견됐다. 물이 휩쓸고 간 자리에 빗살무늬토기 등 유물이 드러났다. 일제의 발굴 팀이 차로 몇 번을 실어 날랐을 정도로 유물은 방대했다. 이후 1971∼75년 발굴조사에서는 이강승 충남대 고고학과 교수가 민무늬토기, 반달칼 등 청동기 유물과 백제시대 문화층을 발굴했다. 암사동은 한반도 인류의 여러 시대 발자취를 한 공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지역이다.
김낙중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연구관은 1997년 전남 나주시 복암리 고분군을 발굴 중이었다. 구덩식돌덧널무덤, 굴식돌방무덤 등 7가지 양식이 혼재하는 특이한 형태에 그는 흥분했다. 5∼6m의 트렌치(도랑)를 파고 구역을 나눠 발굴했는데 종종 깎아내린 벽이 무너지면 손수레가 납작해질 만큼 위험했다. 하루는 사다리를 타고 깊은 구덩이로 내려가다 바닥에 떨어졌다. 머리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목숨을 건진 게 다행이었다.
북한에서의 발굴은 설레기도 하지만 어려운 일이었다. 이상준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2007년 개성의 고려 궁성 만월대를 북측과 공동 발굴했다. 발굴에 앞선 개토제(흙을 파기 전에 토지신에게 올리는 제사)부터 남북은 삐걱거렸다. 미신이라며 못마땅하게 여기는 북측과의 마찰로 결국 종이에 그린 돼지머리로 약식 제사를 지냈다. 하지만 죽부인처럼 생긴 원통형 청자 등 희귀 유물이 쏟아지자 남북 대원 사이의 갈등은 사라졌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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