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기타]누구도 그녀의 마이크를 피할 수 없다

  • 입력 2009년 9월 12일 02시 55분


◇내 인생의 오디션/바버라 월터스 지음·이기동 옮김/780쪽·3만 원·프리뷰

‘인터뷰 여왕’ 바버라 월터스 회고록
세계 각국 정상부터 살인자까지
40년 넘는 인터뷰 뒷얘기 흥미진진

1971년 3월, 백악관 블루룸에서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마주 앉은 바버라 월터스(사진)는 직설적인 질문을 던졌다. “미 국민들이 각하를 인간미라고는 없이 꽉 막힌 고집불통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런 이미지를 가진 것이 걱정되십니까?” 대통령의 눈이 가늘어졌고, 이어 단호한 대답이 나왔다. “갤럽 여론조사에 비위를 맞추는 사람은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올해 80세인 미국의 방송 저널리스트 월터스가 현직 대통령과 한 첫 인터뷰였다. 당시 그는 대통령과의 인터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그 이후 월터스는 제럴드 포드, 지미 카터,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등 수많은 대통령을 인터뷰석에 앉혔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팔레스타인의 야세르 아라파트, 요르단의 후세인 왕 등 외국의 주요 수반들도 만났다.

NBC의 아침 방송 ‘투데이쇼’를 시작으로 인터뷰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그는 승승장구하면서 ‘인터뷰 여왕’의 자리에 올랐다. 이 회고록에서 그는 40년 넘는 세월 동안 세계 각국 수반과 정치 지도자, 연예인, 심지어 살인자까지 다양한 뉴스 메이커들과 한 인터뷰의 막전막후를 담았다. 저널리스트 월터스의 회고록이면서 한 시대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그가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는 인터뷰도 닉슨이 상대였다. 그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하고 6년 뒤인 1980년에 한 인터뷰다. 마지막 30초를 남겨두고 월터스는 닉슨에게 “(워터게이트 사건의 증거물인) 테이프를 태워 버리지 않은 게 후회되느냐”고 물었다. 전 대통령을 배려해서 ‘예스’ 아니면 ‘노’로 최대한 짧게 대답할 수 있도록 시간을 맞춘 것이다. 닉슨은 “그래요,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대답했고 그의 고백은 다음 날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1973년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전쟁을 치른 직후 월터스는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를 연달아 인터뷰한 뒤 같은 시간대에 방영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집트에 도착한 그에게 이집트 관리가 전화를 걸어와 “라빈 인터뷰와 함께 내보낸다면 인터뷰는 불가능하다”고 통보했다. 전화를 도청한 것이었다.

1975년 쿠바에서 그는 높아진 자신의 인지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10여 명의 기자가 조지 맥거번 상원의원을 수행하고 쿠바를 방문했지만 피델 카스트로를 만날 수 없었다. 어느 날 기자단이 묵는 호텔로 군복 차림의 카스트로가 갑자기 들이닥쳤다. 그의 첫마디는 “돈데 에스타 바버라(바버라는 어디 있나)”였다. 그는 투데이쇼의 애청자였던 것이다. 월터스는 그 자리에서 기자회견을 요청했고, 그날 저녁 아바나의 혁명궁전에서 회견이 열렸다.

800쪽에 가까운 책에는 유명인사들에 대한 시시콜콜한 얘기도 가득하다. 재클린 케네디를 수행하고 인도를 방문했을 때는 뉴스거리가 없어 사원 앞에 벗어 놓은 재클린의 신을 보고 “재키가 사이즈 10 신을 신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최악의 인터뷰로는 1960년대 중반 영화배우 워런 비티와 한 인터뷰를 꼽았다. 신작 영화 홍보차 투데이쇼에 출연한 비티는 의자에 푹 파묻혀 하품을 해대며 성의 없는 답변을 반복했다. 월터스는 생방송에서 “미스터 비티, 당신은 내가 지금까지 인터뷰한 사람 중 제일 힘든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다. 진행한 인터뷰 가운데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인터뷰였다. 월터스는 어떻게 가죽끈 팬티를 보여주며 대통령을 유혹할 생각을 했느냐는 식의 노골적인 질문으로 시청자의 궁금증을 대변했다.

책 말미에서 월터스는 인터뷰를 하는 게 점점 힘들어진다고 고백한다. “이제는 모든 유명 인사가 변호사와 언론 담당 에이전트를 두고 있어, 가장 유리한 방송시간은 물론이고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흥행과 광고효과가 보장되는지까지 일일이 체크하려 한다. 인터뷰하기 위해 기자가 오디션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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