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파리 경매에서 10만 파운드(약 2억 원)가 넘는 돈을 내고 고갱의 작품을 한 점 샀는데, 여러분 생각에 너무 비싼 것 같은가? 사실 그 사람이 소장하고 있는 다른 고갱 작품보다 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아깝게 경매에서 진 사람이 이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와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면 어떨까. 그 사람 역시 고갱의 작품을 5점 소장하고 있는데 덕분에 가격이 덩달아 뛰어올라 자산 가치가 5분 만에 월등히 상승했으니까.”》
돈에 울고, 돈에 웃은 거장들
미술 경매 전문가의 성공담이 아니다. 저자가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에서 찾은 피카소의 책 내용이다. 저자는 피카소가 “예술은 비즈니스”라는 명제를 내린 것 같다고 소개한다. 피카소만이 아니다. 저자는 “예술이 비즈니스인 것은 우리 시대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문헌을 뒤져 돈에 울고 웃은 예술가의 삶을 살펴본다.
피터 폴 루벤스(1577∼1640)는 탁월한 사업가였다. 루벤스는 1636년 스페인의 펠리페 4세에게서 상당히 많은 양의 그림을 빨리 그려 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그는 전문 작업팀을 두고 꼼꼼히 일을 분배했다. 누구는 의상 표현에 강하니까 성직자들의 가운을 전담해 그리게 하고, 다른 이는 배경만을 반복해서 그리는 식이다. 이들은 하루 종일 작업을 해서 15개월 만에 대형 캔버스 작품 56점을 생산해 냈다.
하지만 손님들이 루벤스의 집을 방문했을 때는 물감 섞는 연습을 하며 ‘견습생 연기’를 충실히 했다. 루벤스는 다른 화가들의 작품 구입에도 열중했다. 본인 작품에다 자신이 구입한 다른 작가의 작품을 끼워 파는 것을 즐겼기 때문이다.
지안 베르니니(1598∼1680)는 이벤트의 귀재였다. 베르니니가 로마 나보나광장의 한가운데 대형 분수를 만들었고, 교황은 시간에 맞춰 제막식에 참석했다. 하지만 정작 물이 흐르지 않았다. 교황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베르니니는 머리를 조아리고 퇴장하는 행렬의 뒤를 따랐다. 그 순간 일꾼 하나가 소리를 질렀다. “물이 나온다”라고. 100개의 구멍에서 물이 분출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베르니니는 이날 자신의 일생에서 손꼽을 만한 최고의 쇼를 연출한 것이다.
추기경 보르게세의 흉상 제작에서 베르니니의 상업 감각은 빛난다. 흉상을 덮은 천을 걷자 흉상에 금이 있는 것이 발견됐고, 추기경은 실망했다. 베르니니는 창피해서 못 견디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2주 안에 추가요금 없이 새로 만들겠다”고 약속했고, 결국 수개월 걸리는 흉상 제작을 2주 안에 해냈다. 추기경의 마음과 함께 명성까지 얻은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예술성에 비해 사업 수완이 부족했던 예술가들도 있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는 양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다섯 형제 중 맏형이었다. 동생들은 직업이 일정치 않아 틈만 나면 미켈란젤로에게 손을 벌렸다. 작품 값도 제대로 받지 못했던 그는 결국 1509년 빈털터리가 됐다. 하지만 그는 병약한 아버지에게 쌈짓돈을 보내며 말했다.
“살아 계셔 주세요. 세상에 있는 모든 금을 동원해서라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도 가난했다. 그는 밥벌이를 위해 한때 연주자로 활동했고 퍼레이드와 야외극을 기획하거나, 글자 맞추기와 수수께끼 등의 게임을 고안해 내기도 했다. 작품 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수첩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입을 만한 옷이 없다.” 거장(巨匠) 다빈치의 고민이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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