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들끼리 속닥거리는 이야기와, 거실에서 목소리만 들려오는 남편과의 대화를 통해 세 여자의 가정사가 속속들이 드러난다. 가사에 서툰 데브라(조경숙)는 바람둥이 남편에게 꽉 쥐여 산다. 반대로 남편의 과도한 애정공세에 시달리는 몰리(이연희)는 정작 남편의 잠자리 거부로 아기를 갖지 못해 안달이 났다. 이날 파티의 안주인인 니키(이연규)는 횡령혐의로 기소된 남편의 변호사비 마련을 위해 직장을 그만둬야 할 처지다.
셋은 여자로서 모두 치명적 약점을 지녔다. 그 약점은 모두 남편에서 비롯한다. 데브라의 약점이 바람기 많은 남편이라면 몰리의 약점은 아내에게 병적으로 집착하는 남편이다. 니키의 약점은 자신의 명예에 먹칠을 한 남편이다. 하지만 세 여자는 서로 자신의 상처받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 아옹다옹 다투기 바쁘다. 자신의 꼬리는 물리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꼬리를 물려고 빙글빙글 맴돌던 그들에게 갑자기 ‘복음’이 전해진다. 부엌 바닥을 쿵쿵 치는 소리. 멍청한 세 남자가 니키의 남편이 거금을 들여 장만한 지하 냉동고에 갇힌 것이다.
연극 ‘남편이 냉장고에 들어갔어요’(극본 미셸 로, 연출 하상길)가 빚어내는 발칙한 상황이다. ‘웬수들’의 운명의 열쇠를 쥔 세 여자는 그들을 냉동고에 놔둘 것인가 꺼내줄 것인가를 놓고 살벌한 투표를 시작한다. 미국 브로드웨이의 블랙코미디 ‘스멜 오브 더 킬’을 번역한 이 작품은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를 보기 좋게 뒤집는 대사의 힘에서 나온다. 극중 데브라는 묻는다. “그 남자가 지난 10년간 내게 잘못한 게 죽어야 할 만큼 큰 죄일까.” 답은 극장에서 들어보시기를. 3만 원. 10월 31일까지 서울 중구 정동 제일화재 세실극장. 02-736-7600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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