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만 천명 선화, 세 자매 공주의 진실

  • 입력 2009년 9월 18일 02시 59분


19일 방영되는 KBS1 ‘역사스페셜’의 ‘세 여자 이야기’편에선 선화, 덕만, 천명(왼쪽부터) 공주 이야기를 재연 형식으로 보여준다. 사진 제공 KBS
19일 방영되는 KBS1 ‘역사스페셜’의 ‘세 여자 이야기’편에선 선화, 덕만, 천명(왼쪽부터) 공주 이야기를 재연 형식으로 보여준다. 사진 제공 KBS
KBS1 역사스페셜

KBS1 ‘역사스페셜’은 19일 오후 8시 신라 진평왕의 세 딸인 덕만, 천명, 선화 공주의 이야기를 다룬 ‘세 여자 이야기’를 방송한다. 제작진은 “MBC 드라마 ‘선덕여왕’이 방송되기 전부터 기획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화랑세기를 근간으로 한 것에 비해 ‘역사스페셜’은 삼국유사, 삼국사기의 내용을 주로 참고했다. 덕만 공주는 632년 1월 화백회의를 통해 우리나라 최초로 여왕이 됐다.

덕만 공주가 왕이 되는 과정에서 칠숙, 석품의 난 등 여왕의 즉위를 탐탁지 않게 여긴 귀족들의 반란이 있었다. 덕만 공주는 반대세력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여왕에 즉위했을까.

‘삼국유사’는 왕위를 이을 성골 귀족 중 남자가 없어(성골남진·聖骨男盡) 성골 혈통을 지닌 덕만 공주가 왕위를 이었다고 기록했다. 제작진은 “선덕여왕 즉위의 가장 큰 명분은 성골 혈통이었지만 사실 ‘성골’은 진골과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다”며 “법흥왕, 진흥왕, 진평왕으로 이어지는 왕실의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선덕여왕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당시엔 사위가 왕이 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진평왕에게 아들이 없다거나 왕위를 계승할 성골 남자가 없다는 것은 외형상의 명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방송에서는 상대등 비담이 여성 군주는 선한 정치를 펼칠 수 없다며 반란을 일으킨 ‘비담의 난’과 선덕여왕이 정치적으로 의지했던 불교와 관련된 내용도 소개된다. 선덕여왕 대에 창건했다고 알려진 사찰은 영묘사, 분황사를 포함해 25개로 다른 왕대의 창건사찰보다 2∼3배 많다.

김춘추의 어머니인 천명 공주에 관해선 사료가 거의 없어 제작진은 화랑세기를 참고했다. 화랑세기에는 진평왕이 천명 공주에게 ‘왕의 승계권을 덕만 공주에게 양보하라’고 권하자 천명 공주가 효심으로 순종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훗날 백제의 무왕이 된 서동과 선화 공주와의 사랑 이야기도 방송한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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