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만의 신작시집 ‘이별의 재구성’ 낸 안현미 시인
“가난하게 자란 기억이 작품의 모티브로 작용 슬프면서도 발랄하고 싶어”
그가 첫 시집 ‘곰곰’(2006년) 이후 3년 만에 ‘이별의 재구성’(창비)을 펴냈다. 시동인 ‘불편’의 맏언니이자, 올해 초 ‘시인세계’에서 발표한 ‘주목할 만한 젊은 시인’에 선정된 시인이다. 아현동 산동네, 더듬이 긴 벌레들, 훼미리주스병…. 친근하면서도 구체적인 시어로 암담한 청춘, 비루한 현실을 감각적으로 펼쳐 보인 그의 시는 우울한 감성이 풍만하다. 전통 서정시도, 난해한 실험시도 아닌 이 시들은 ‘신(新)서정시’라고 불리기도 한다.
○ “나는 왜 여기 서 있니? 왜?” (‘post-아현동’ 중에서)
“그림과 음악과 호찌민 평전이 있다 먼지가 두껍게 앉은 스탠드도 있다 뉴타운천국 실업자천국 씨네마천국 김밥천국 천국도 종류별로 있다 그때 그 시절! 복고열풍도 있다 냉전도 반민주도 복고 복고, 지지고 볶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던, 엄마만 없다”(‘내 책상 위의 2009’)
안 시인의 시에는 유년기나 생활 속 체험이 녹아 있는 것들이 많다. 골목, 가로등, 방, 엄마 같은 단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손택수 시인은 발문에서 이를 “삶의 밀도 있는 경험으로부터 나온 환상시”라고 말했다. 그 경험은 어떤 것들일까.
“1970년대 세대면 사실 가난하다고 할 수는 없죠.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 가족이 가난했어요. 그 기억을 그대로 보여주기보단 상상과 현실의 경계 지점에서 고민했죠. 현실이 비참할수록 몽상을 많이 하게 되잖아요. 결국 삶이 시가 되는 거니까 내 삶을 모티브로 시를 써내려가게 되는 것 같아요.”
안 시인은 어려운 형편 때문에 상업고를 졸업한 뒤 직장생활을 하다 뒤늦게 문학을 했다. 대체로 젊은 시인들의 시가 실험시 서정시 등으로 구분되는데 이 지점에서 안 시인은 애매하다. 그는 “어떤 사람은 서정에 가깝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말장난에 주목하고 또 누군가는 모성이나 파괴적 여성성을 동시에 발견한다”며 “하나의 틀에 나를 가두고 싶지 않아서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 “일주일 내내 현명하고 아름다운 사람은 없다”(‘기타여’ 중에서)
서울산업대 문창과 시절 꾸렸던 습작모임 ‘구인회’, 2002년 시작한 시동인 ‘불편’까지 그는 “절반의 인간관계는 시인들”이라고 한다. 친한 시인들은 그의 작품을 이렇게 평한다. “미학주의자지만 어쩔 수 없이 비루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의 내면을 읽은 느낌”(김언), “발랄한 퇴폐”(박진성), “죽는 소리 하지 않는다”(김민정). 이런 감상들을 끌어내는 것은 시인의 일상과도 연관이 있는 듯했다.
“삶이 예술 같지는 않죠. 오전 아홉 시면 출근하고, 일 많으면 야근하는 어쩔 수 없는 생활인이니까요. (고독, 상실, 비루함 등이) 저를 둘러싼 삶 자체이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아도 그런 시들을 쓰는 것 같아요. 하지만 슬프면서도 발랄하고 싶어요.”
그는 첫 시집에서 보였던 언어유희적인 면모를 이번 시집에서는 덜어냈다. 최대한 진솔하게 시나 삶을 바라보기 위해서다.
“시로 위로를 받았던 만큼 나의 시도 옆에 있는 사람 하나 정도는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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