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았지만 집에 앉아 아이만 양육할 수 없었습니다. 남편과 상의한 끝에 아이를 베트남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로 보냈습니다. 맞벌이를 하는 다른 베트남 여성도 그렇게 하는 경우가 있어 취학 연령이 되면 데려올 작정이었습니다. 남편과 자신이 열심히 벌어 아이가 학교 갈 무렵쯤엔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길 거라고 그녀는 믿었습니다. 그래서 베트남의 아이가 보고 싶고 일가친족이 그리워도 이를 악물고 견뎠습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더 이상 한국에서의 미래를 꿈꾸지 않습니다. 취학 연령이 되면 데려올 작정이던 아이는 아예 데려오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이가 베트남에서 취학할 연령이 되면 자신과 남편도 베트남으로 가서 그곳 국적을 취득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아이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언어적으로 문화적으로 차별받는 게 싫고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는 남편도 한국에서의 자기 미래를 비관하기 때문입니다. 더는 한국에 발붙이고 살아야 할 마음의 근거가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한국인도 살기 힘들어하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그녀는 생각합니다. 그런 나라에서 자신이 겪은 삶을 자식에게까지 겪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게 그녀의 모성입니다. 지하 사글셋방에서 그녀는 오직 자신이 떠나온 고향과 가족, 그리고 따뜻한 사람의 정이 그리워 남몰래 눈물 흘렸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모든 가치가 돈으로 결정되므로 돈이 없으면 사람답게 살기가 힘들다는 게 그녀의 한국관입니다. 돈이 아니라 사람의 정이 그리워 그녀의 향수병은 날이 갈수록 깊어갑니다.
베트남으로 돌아가 베트남 국적을 취득하고 사는 그녀의 가족을 상상해 봅니다. 한국에서 일하는 정도의 절반만 일해도 베트남에서는 편히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한국에서의 삶을 돌아보기 싫은 과거로 치부할지 모릅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그녀의 아이, 그녀의 남편도 한국을 떠올리기 싫은 나라로 치부할지 모릅니다.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나라, 우리가 자부심을 느끼는 나라의 그늘에서 소리 소문 없이 고사당하는 아픈 꿈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여기, 우리가 신봉하는 ‘가진 것-생긴 것’의 그늘에서 사랑이 고갈되고 인성이 황폐해지는 사막이 드넓어지기 때문입니다. 내 가슴은 다문화가 뿌리 내릴 수 있는 토양인가, 우리 모두 자신에게 물어보아야겠습니다. 이 땅에서 ‘다문화’라는 말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작가 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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