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역사]<11>충남 공주 황새바위 순교성지와 경당

  • 입력 2009년 9월 23일 03시 00분


소박해서 더 경건한 ‘피의 성지’

《1971년 충남 공주에서 무령왕릉이 발굴됐다. 출토된 유물이 자랑스러운 것은 물론이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지석묘에 나타난 문구였다. 그것은 일본, 중국 양(梁)나라 등 당시 동아시아 열국과 백제가 맺었던 흥미로운 관계의 중심에 공주가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그로부터 10년 뒤, 젊은 조 베르나르도 사제가 공주에 부임했다. 그리고 이곳 가톨릭 순교지의 기록을 꼼꼼히 모으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입으로만 전해지던 황새바위의 애잔한 역사가 정리되고 순교성지 축성 사업이 시작됐다. 건축가 김원의 노력으로 1985년 11월 7일 황새바위 순교성지라는 기념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극묘사 조형물 없이 방문자 스스로 생각하게
경당과 기념탑만으로 순교지 역사 - 의미 표현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이곳은 나라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기념사업’을 부끄럽게 만든다. 너무나 소박한, 하지만 그곳에 담긴 역사의 원인, 과정, 결과, 의미 모두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오는 공간. 건축면적 19.8m²의 경당과 높이 13.8m의 기념탑이 이 공간이 가진 전부다.

공주에 ‘천주학 죄인’들의 순교지가 생긴 것은 이 일대가 가톨릭이 일찍 들어온 전교지이면서 충청감영이 위치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존창 루도비코(1801년 순교), 손자선 토마스(1866년 순교) 등 기록된 순교자 248명 외에도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사람이 감영으로 끌려와 모진 고초를 겪은 뒤 황새바위에서 목숨으로 신앙을 고백했다.

피로 흥건히 물들었을 제민천 하구, 공산성 반대편 언덕 위에 황새바위 순교성지가 있다. 탑과 경당 모두 김원 건축 특유의 정연한 입방체로 구축돼 있다. 경당은 이 터에 무거운 침묵을 내리고, 탑은 여기 하늘에 날카로운 소리를 던지는 듯하다. 화강석이라는 흔한 재료가 건축가의 손으로 다듬어져 형태와 공간을 구성했지만 그 요소들은 완성과 동시에 어느 한 사람이 계획한 의지에서 벗어났다. 장소에 담긴 온갖 기억이 여러 줄기의 의미가 되어 방문한 사람들 각자의 마음속을 흐른다.

잘 만든 기념의 장소는 그곳을 찾아와 경험하는 사람에게 ‘박제가 된 기억’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그 장소가 기념하고자 하는 역사적 사건을 방문자가 제각기 능동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생각의 틈을 만들어 준다. 그 틈 속으로 전과 다른 새로운 인식이 생겨나고 스며들기를 요청하는 장소, 그곳이 바로 좋은 기념공간일 것이다.

해석의 여지를 넉넉히 남겨둔 기념공간은 구체적인 ‘몸짓’을 드러내지 않는다. 때로는 주제가 되는 사건 하나만으로 공간에 쉽게 다가가는 사고(思考)를 허락하지 않기도 한다. 몰입을 방해하고, 낯설게 만든다. 연극이나 영화에서 관객이 사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잃지 않도록 하려고 쓰는 ‘거리 두기 전략’과 비슷하다.

황새바위 성지의 건축물들은 당시의 비극 또는 순교가 가진 역설적 희열을 상징이나 묘사로 드러내지 않았다. 이곳에는 구체적인 조형물이 없다. 그저 몇 개의 정제된 돌덩이가 서 있고, 그 돌벽 위에 겨우 알아 낸 순교자의 이름 몇을 새겨 놓았을 뿐이다. 발길을 멈춘 방문자는 자연히 오래 묵은 과거가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 순환하는, 자기만의 기도에 닿게 된다.

하나의 도시가 가진 것은 기원(基源)만이 아니다. 그 뒤에 면면히 따라 쌓인 역사와 삶이 있다. 기원만을 돌아보며 사는 것은 허망하다. 그런데 지금 공주라는 도시의 삶이 조금은 그래 보인다. 이 도시에는 백제라는 화석보다 수십 배 더 긴 삶이 계속 쌓여 왔다. 함께 기억할 만한 여러 가지 일을 도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중 하나가 황새바위의 기억이다. 그 ‘기억’은 한 사제와 건축가가 종교와 건축 양면에서 풍성한 의미를 채워낸 공간으로 시작했다. 이것은 무령왕릉 발굴에 이어진 공주의 큰 사건이라 할 만하다. 더 널리 알려야 하고, 공주 스스로도 더 많이 알아야 한다.

한번 시작한 장소의 기억은 스스로 역사를 쌓는다. 그러나 불행히도 사람에게는 그것을 지키기보다 훼손하려는 힘이 더 강한 것 같다. 언제나 인내와 지혜가 모자란다. 황새바위 언덕 아래 나중에 들어선 생경한 형상의 안내소 건물은 모처럼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경당 앞에 덧붙인 제대(祭臺)도 어색하다. 모습도 그렇지만 위치 또한 있어야 할 거기가 아니다. 대전교구에 고언하고 싶다. 한국 가톨릭의 성스러운 장소인 황새바위를 다시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이곳을 처음 만든 건축가에게 책임과 권한을 함께 주는 것이 뜻 깊은 일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종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⑫회는 김광현 서울대 교수의 ‘서울 종로구 삼일빌딩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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