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이맛!]등딱지 하나면 밥 한공기 뚝딱… 꽃게

  • 입력 2009년 9월 25일 02시 51분


꽃게끼리 만나/먼저 길을 가게 비키라고/시비를 걸다가/가위 바위 보로/결정하기로 합니다.//가위, 바위,/가위,/가위, 바위,/가위,/가위, 가위,/가위,//자꾸 가위만 내/승부가 나지 않는데도/서로 이겼다고/양손으로 V자를 만들어 치켜듭니다.//옆으로 가기 때문에 그냥 가도 부딪히지 않는다고/바위, 모양 불가사리 기죽어 중얼거립니다. (함민복 ‘꽃게’ 전문)

비행기 이코노미석에 앉는 순간, 모든 사람은 냉동꽃게가 된다. 10시간 넘게 날아가는 유럽행 비행기라면, 아예 꽃게화석이 된다. 차렷 자세로 굳어버린 몸. 조금도 움직일 틈새하나 없이 꽉 끼인 자리. 앞으로나란히 일렬종대로 묶여있는 수산시장 꽃게두름이 따로 없다. 포승줄의 꽃게들은 기진맥진, 시나브로 게거품을 뽀글뽀글 내뱉으며 까무러친다.

게(Crab)는 흔히 무장공자(無腸公子)라고 부른다. ‘창자 없는 신사’라는 뜻이다. 평생 창자 끊어지는 아픔을 모르고 사니 얼마나 좋으냐는 것이다. 횡행개사(橫行介士)라는 칭호도 있다. 용왕님 앞에서도 기개 있게 옆걸음질 치는 무사라는 것이다. 게의 딱딱한 껍질은 갑옷, 뾰족한 집게는 창을 상징한다. 우직한 장군 이미지가 떠오른다. 횡횡군자, 강호사자, 곽선생, 내황후 등 다른 별명도 모두 좋은 뜻을 담고 있다. 조선선비들의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꽃게는 다른 게에 비해 헤엄을 잘 친다. 그래서 영어이름이 스위밍 크랩(swimming crab)이다. 4, 5월 봄엔 알이 가득 찬 암게가 맛있고, 가을엔 살이 차진 수게가 쫀득쫀득하다. 가을 암게는 알을 낳은 뒤라 살이 푸석하다. 산란기인 7, 8월은 잡지 못하는 기간이다. 이땐 보통 냉동꽃게를 먹는다.

암컷은 등딱지가 어두운 갈색인 데다 아래쪽에 흰무늬가 있다. 수컷은 초록빛을 띤 짙은 갈색이다. 하얀 배딱지는 암컷이 둥글고, 수컷은 삼각모양으로 뾰족하다. 꽃게는 다리가 양쪽에 5개씩 모두 10개가 달려있다. 가장위쪽 집게다리로 작은 물고기 등을 잡아먹는다. 나머지 4쌍 다리는 옆걸음질 치거나 헤엄칠 때 쓴다. 맨 아래 1쌍 다리는 부채모양으로 넙적 평평해 헤엄치기에 안성맞춤이다.

요즘은 뭐니 뭐니 해도 꽃게탕이 일품이다. 얼큰하고 시원한 데다 구수한 맛이 좋다. 아이들 입맛 돋우는 데 좋고, 술꾼들 해장에도 그만이다. 꽃게탕 요리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쌀뜨물, 다시마, 무, 멸치 등으로 국물을 우려낸 뒤, 거기에 된장, 고추장(1 대 2 비율)을 푼다. 그 다음엔 국물에 꽃게와 감자 애호박 양파 쪽파 버섯 고추 오징어 등을 썰어 넣고 끓이면 된다. 양념은 고춧가루 맛술 마늘 소금 생강 후추로 한다. 어느 정도 끓고 난 뒤 마지막엔 쑥갓 미나리를 넣어 풋풋하고 상큼한 맛을 곁들인다.

‘밥도둑’ 꽃게장은 6월 암게로 담그는 게 최고다. 가을엔 참게장이 제맛이다. 섬진강 하류 하동 동백식당(055-883-2439)이 붐빈다. 10월 늦가을쯤에 가야 노란 황금색 알에 기름이 자르르 흐른다.

참게는 강 하류나 하천에서 산다. 집게 아래쪽에 털 다발이 텁수룩하다. 논두렁 논둑에 구멍을 파고 살기도 한다. 요즘엔 대부분 양식 참게다. 임진강 섬진강 일부지역에서만 자연산 참게가 잡힌다. 참게장은 펄펄 끓인 묵은 간장(물+다시마+무+양파+마늘+고추+생강+감초+생지황)을 참게에 부어 삭힌다. 식으면 따라낸 뒤, 그것을 다시 끓여 붓기를 최소 대여섯 번은 해야 한다.

꽃게가 간장 속에/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꿈틀거리다가 더 낮게/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어찌할 수 없어서/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한 때의 어스름을/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저녁이야/불 끄고 잘 시간이야. (안도현 ‘스며드는 것’ 전문)

꽃게갑옷은 키토산덩어리이다. 키토산은 암을 예방해주고 혈압과 콜레스테롤을 낮춰준다. 변비 당뇨병 간장 질환에도 좋다. 꽃게 살은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풍부하다. 소화를 도와주고 입맛까지 돋워준다. 철분과 칼슘 인 등 무기질도 풍부해 빈혈에도 효과가 있다.

꽃게요리는 바닷가에 있는 꽃게요리 전문점이 제격이다. 강화외포리 충남서산집(032-933-8403), 외포리꽃게집(032-933-9395), 안면도 풍년호털보선장집(041-672-1700), 일송(041-674-0777), 여수 진성횟집(061-651-9399), 두꺼비게장(061-643-1880), 진미꽃게탕(061-684-1747) 등이 그런 집들이다. 서울 마장동의 목포산꽃게(02-2292-1270), 군산 궁전꽃게장(063-466-6677), 전북 완주 봉실가든(063-263-6883) 등도 발길이 붐빈다.

꽃게를 고를 땐 우선 들어봐서 묵직해야 한다. 요즘 암게는 알을 부화한 뒤라 수게에 비해 가볍다. 손가락으로 눌러 봤을 때 단단하고 물이 나지 않아야 한다. 배가 희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이 맛도 신선하다. 다리 10개가 모두 붙어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게는 남의 다리 잡는데 선수이다. 뚜껑 없는 고무함박지에 산 꽃게를 가득 넣어도, 밖으로 기어 나오는 게는 거의 없다. 함박지 밖으로 나오려는 순간, 다른 게가 다리를 잡아당기기 때문이란다. 인간 세상에도 게같이 남의 뒷다리 잡아당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게는 무슨 요리를 해도 깊은 맛, 곰삭은 맛, 감칠맛이 난다. 게장의 곤곤한 맛이 그렇고, 꽃게탕의 매콤새콤한 맛이 그렇다. 게 속에는 조미료의 주성분인 글루탐산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가족이 둘러앉아 꽃게탕을 먹는다. 집게다리 흰 살을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잡고서, 아귀아귀 쪽쪽 빨아먹는다. 입가에 묻은 불그스레한 흔적들. 게 등딱지를 열면 주황색 알들이 석류 알처럼 가득하다. 그 등딱지 하나만 가지고도 흥부네 식구가 다 먹을 수 있겠다. 게 등딱지는 아버지의 넓은 등짝을 닮았다. 눈보라 폭풍우를 막아주던 넉넉한 등판.

문득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는 왜 꽃게탕을 먹지 않을까. 조선선비 송시열(1607∼1689)처럼 ‘게는 비틀걸음 걷는 상놈’이라서 먹지 않는 걸까. 아니다. 아버지는 무거운 갑옷을 걸치고 전쟁터로 나가 있다. 밑도 끝도 없는 세상일과 피 터지게 싸우고 있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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