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객 무영(조승우)은 나룻배를 타러 온 민자영(수애)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자영은 황후가 될 사람으로 고종과의 혼례를 앞두고 있다. 사랑의 감정을 걷잡을 수 없는 무영은 입궁 시험을 통과해 자영의 호위무사가 된다. 무정한 남편 고종과 사사건건 부닥치는 시아버지 흥선대원군 틈새에서 지쳐가던 자영은 자신의 곁을 지키는 무영의 헌신적인 태도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영화는 여러 가지 점에서 추석용 종합선물세트 같다. 92억 원을 들인 영화답게 의상 무대 같은 외양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엿보이고, 컴퓨터그래픽의 힘을 빌린 결투 장면은 판타지 게임을 보는 듯 화려하다. 여기에 수애와 조승우가 각각 왕비와 호위무사로 가슴 시린 사랑을 보여준다.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조승우는 군에 입대했다) 일본 자객들에 둘러싸인 민비를 온몸으로 막아낸 무영의 최후는 눈물겹다. 찬 바람이 부는 가을, 눈물 훔치는 멜로 영화는 관객의 구미를 당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종합선물세트는 막상 열고 보면 먹을 게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듯하다. 영화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이 어느 것 하나 아귀가 들어맞지 않고 표류한다.
역사적 인물과 사건들은 둘의 사랑을 이뤄주기 위한 알리바이로 이용되거나 왜곡됐다. 쇄국과 개국 사이에서 대립하는 흥선대원군과 민비의 갈등이 피상적으로 그려지고, 코르셋을 입은 민비를 그윽하게 바라보는 무영만이 도드라진다. 극 초반 사랑에 빠진 무영이 자영에게 호랑이 가죽을 선물하거나 해당화를 건네는 장면은 선뜻 공감하기 힘들다.
특히 영화의 중요한 볼거리 중 하나인 무영과 뇌전의 결투 장면은 과도한 컴퓨터그래픽으로 중용의 미덕을 잃었다. 전기점화식 도중 벌어진 무영과 뇌전의 칼싸움 장면은 급작스럽게 배경이 빙하로 바뀌며 극의 흐름을 깨버렸다. 15세 이상 관람가.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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