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개 한 마리와 함께 발길 닿는 대로 여행을 다니는 남자. 그런데 이 여행이 어딘가 예사롭지 않다. 정해진 목적지가 없고 차라리 방랑에 가깝다. 버스나 기차가 멈추는 대로 떠돌아다니며 모텔에서 잠을 청한다. 그리고 여행 중 만난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쓴다. 답장 한 통 오지 않건만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그 작업을 계속해나간다. 편지를 쓸 때마다 한 사람 한 사람씩, 각자 사연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떠오른다.
올해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인 소설가 장은진 씨의 장편소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는 한 편의 동화처럼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여행 이야기다. 겉옷 한 벌에 속옷 두 벌만 챙긴 채 하염없이 편지를 쓰는 고독한 남자. 그리고 그가 편의상 숫자로 기억하는 (마치 모텔의 객실 번호처럼) 사람들. 어린 시절 자신의 실수로 식물인간이 된 친구를 위해 평생 옆에서 시를 읽어주던 239, 첫사랑을 못 잊어 기차에 머무는 109, 지하철에서 자기 책을 파는 여자 소설가 751….
주인공 자신의 사연은 뭘까. 원래 말을 더듬고 밀폐공포증이 있던 그는 집을 떠나 다른 공간에 있을 때 모든 증상이 완화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악명 높은 수학선생인 어머니, 전교 일등 모범생인 형, 쇼핑 중독인 여동생,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버지 등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가족을 떠나 이상한 여행을 시작하기로 한 뒤 ‘편지’로 새로운 소통을 모색한다.
그의 외로움은 과연 치유될 수 있을까. 누군가로부터 답장을 받을 수 있을까. 이 기이한 여행은 언제쯤 끝이 날까. 자극적인 사건 없이도 소설은 시선을 끝까지 붙든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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