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맨얼굴’ 20선]<14>예술, 정치를 만나다

  • 입력 2009년 9월 28일 03시 04분


◇ 예술, 정치를 만나다/박홍규 지음/이다미디어

《“정치와 예술의 과제는 각각 현실 변혁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세운다고 해도 그 길이 다를 수밖에 없다. 정치의 과제는 가능한 한 다수 민중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공동체를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반면 예술의 과제는 가능한 한 민중이 각자의 독자적인 이의 제기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공동체를 실현하는 것이다.”》

‘정치의 창’으로 본 예술가 8인

예술과 정치. 오랜 인류 문화사 속에서 이 두 분야는 때로는 행복한 동반자로, 때로는 불편한 만남으로 흥미로운 족적을 남겨 왔다. 예술과 정치의 만남은 곧 예술가와 정치의 만남이나 다름없었다.

이 책은 정치와 관련이 깊었던 예술가들의 삶을 통해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들여다본다. 시대상황으로 불가피하게 정치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예술가, 정치에 철저하게 대항한 예술가, 정치를 예술로 조롱한 예술가 등. 예술가가 품고 있는 정치적 내면을 흥미롭게 살펴보았다. 부제는 ‘위대한 예술가 8인의 정치코드 읽기’.

저자가 소개하는 예술가는 8명이다. 예술과 정치를 조화시킨 바로크의 거장 루벤스, 신에게 도전한 르네상스 인간 괴테, 세계 제국을 꿈꾼 오페라의 황제 바그너, 조국 통일을 노래한 민족주의자 베르디, 예술의 죽음에 맞선 혁명가 피카소, 히틀러의 광기에 저항한 채플린, 권력과 권위를 거부한 사르트르, 자유를 노래한 평화주의자 레넌.

17세기 플랑드르의 궁정화가였던 루벤스는 예술과 정치의 관계에서 행복한 예술가였다. 그는 왕궁이나 귀족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암투의 와중에서도 어떤 권력이나 부에 복종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창조해냈다. 부와 권력의 유혹이 다가올수록 오히려 자연과 인간의 존엄성을 찬미하는 그림에 몰두했다. 예술로 정치를 극복한 것이다.

정치와 예술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예술가가 19세기 독일의 음악가 바그너다. 게르만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를 내세운 음악으로 히틀러에게 영감을 주었던 바그너.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와 그의 예술은 정치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수많은 어용 예술이 물거품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과 달리 바그너의 오페라는 살아남았다. 물론 그의 작품이 가진 높은 예술성 때문이다.

프랑스의 20세기 철학자이자 작가였던 사르트르에 이르면 한층 더 적극적인 예술과 정치의 만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저자는 “작가라면 그 방식이 가장 명예로운 방식이라고 해도 스스로 기관(機關)화되는 것을 거부해야 하며 인간과 문화는 기관의 간섭 없이 존재해야 한다는 게 사르트르의 신념이었다”고 평가한다. 사르트르가 가장 철저하게 권력을 거부한 예술가라는 뜻이기도 하다.

현실 속에서 보여주었던 사르트르의 자유주의와 반권력 예술주의는 달리 말하면 예술 그 자체에 대한 존중이었다.

“사르트르는 희생이나 헌신의 이념에 의한 운동은 회피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념에 기초하는 것은 언제나 전체주의로 흐를 위험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 이념이 개인의 개체성을 희생하거나 헌신을 요구하는 논리를 내재하는 경우는 더 위험하다고 보았다.”

저자는 여기에 덧붙여 “예술이 권력의 호위를 얻어 권력의 꽃으로 전락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술가도 사회적 인간인 만큼 정치와 만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예술은 그 안에 정치적인 메시지와 정치적 정황을 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정치적 메시지도 예술이 살아남을 때 비로소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법. 어쩌면 이것이 예술과 정치의 진정한 관계인지도 모른다. 예술이 정치를 만난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예술은 언제나 영혼의 자유로운 표출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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