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흰돌마을 영구 임대아파트에 사는 강신수 할머니(82)는 일제강점기였던 열일곱 살 때 처음 잡은 재봉틀로 일본군 군복을 만들었다. 광복 후에는 국군 군복과 경찰 제복이 강 할머니의 재봉틀을 거쳐 갔다. 1960년대에는 한 달에 딱 이틀을 쉬며 수출 역군으로 일했다. 강 할머니의 재봉틀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이 그대로 담겨 있다.
26일 강 할머니가 사는 아파트 단지 빈터에서 여든 넘은 할머니들의 ‘팔순 회고전’이 열렸다. 강 할머니의 손때 묻은 재봉틀도 회고전 한켠에 전시됐다. 이 행사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생활문화공동체 만들기’ 사업의 한 프로그램으로 올해 처음 열었다. 영구 임대아파트에 사는 여든이 넘은 노인들이 살아오면서 얻은 경험과 노하우를 같은 마을에 사는 젊은 사람들과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할머니들의 회고전은 같은 마을에 사는 어린이기자단이 직접 준비했다. 녹음기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꼬깃꼬깃한 사진이며 편지를 액자에 정성스레 담았다. 학생들은 전시를 준비하며 책에서만 봤던 역사를 할머니들의 생생한 이야기로 배웠다. 현경희 할머니(82)의 일제강점기 소학교 이야기는 학생들에겐 신기하기만 했다. “나에게는 부끄러운 이름이 있어. 구로카와 게이키라는 일본 이름이지. 당시 일본인들은 우리말을 못 쓰게 하면서 이름도 일본식으로 바꾸게 했거든.”
조곤조곤한 말씨로 전시된 연애편지를 설명해 주던 김수영 할머니(88)는 ‘소녀’ 같기만 했다. “이게 1940년 12월 23일 남편이 보내온 편지예요. 일본에 출장 가서 ‘나 잘있소’ 하고 보내온 것인데 그때는 보고 싶다는 말도 창피해서 못했지.”
김 할머니는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하다 남편을 만났다. 광산에서 쓰는 화약과 지게를 파는 가게였다. 광복이 되고 일본인이 쫓겨나면서 가게를 둘러싼 싸움이 일어났다. “광복 직후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지. 남편도 그 와중에 병을 얻어 몸져누웠다가 그대로 일어나지를 못했어.” 할머니는 1945년 남편이 먼저 떠난 뒤 남은 두 딸을 홀몸으로 키웠다. “해방둥이 딸이 올해 예순다섯이야. 잊어버리니까 사는 거지 다 기억하면 그 감당을 어찌 해. 그래도 새삼 기억을 꺼내 보니 나 이렇게 살았네 싶어.”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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