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하는 것이 좋아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이 먼 곳까지 내려와 궁핍하고 힘든 생활을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는 건 사실 그리 마음 편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예술가의 집념과 인간으로서의 자존의 길을 보는 것 같아 경건하기도 하고 새삼 많은 것을 깨닫는다. 그런 작가들의 삶에 비하면 나의 일상이나 인생이라는 것이 또 얼마나 허약하고 나약하며 게으른 것이냐 하는 자괴감이 어깨를 누름과 동시에 산다는 것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그들은 왜 외딴 작업실로 갔나
‘선을 본질로 삼은 그림’을 추구했던 고(故)김근태는 경주의 허름한 산사에 딸린 옛 서당 건물로 흘러들어가 자신의 부족함을 극복하려 했다. 철저하게 자신 속으로 칩거해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는 다짐이 그를 세상과 절연시킨 것이다.
예술 때문에 방황하던 고교 시절 ‘명동 화랑’에서 권진규의 조각을 보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전율과 감동을 받은 것이 계기였다. 권진규가 보여준 세계는 교육으로 이룰 수 없는 것임을 깨닫고, 고교 졸업 후 독학의 길을 걸으며 인간 내부로만 다가서던 그였다. 20년의 세월을 지게 지고 나무하고 물 긷고 호롱불에 의지해 직업도 없이 기적처럼 버틴 것은 이 같은 미술과 삶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미술비평가인 저자의 눈으로 외딴 시골에 작업실을 꾸미고 그 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 10인의 삶을 담았다. “특정한 형태로 굳어진 가치에 안주하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찾아나가는 것, 그러한 노력과 시도야말로 삶을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이자 예술가의 전제 조건”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그런 삶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경기 광주에 작업실을 두었던 김을은 주류 미술 교육을 받지 못한 아웃사이더다. 그래서 스스로도 늘 촌놈이라고 말한다. 그는 일부러 그림을 못 그리기 위해 1.5m의 막대 끝에 붓을 매달아서 작업을 한다. 조형적인 요소가 지나치게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 혼을 찾기 힘들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저자에게 “가볍고 못 그렸지만 감동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은 것”이 자신의 길이라고 말한다. 그는 직업을 갖지도 않고, 미술의 이름을 빌려 돈을 벌지도 않는다. 목수 기술을 배워 생계를 유지할 만큼만 일을 하면서 그림 외의 군더더기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전남 담양에 사는 박문종의 그림은 고졸하고 순박하며 어리숙한 미감으로 가득하다는 것이 저자의 평가다. 전남 무안의 농사짓는 집안에서 태어나 다시 시골에서 작업하는 그의 그림에는 동양화단의 무분별한 서구 미술 수용과는 다른, 우리 그림 특유의 울림이 있다고 한다.
박문종은 농촌에 뿌리를 둔 그림을 위해, 그 그림에 요구되는 절실한 체험을 위해 작업실을 광주에서 담양으로 옮겼다. 그는 “작업의 내적 에너지에 부합되는 적절한 환경이 필요했고 그걸 밑천 삼아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방법이 필요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들 외에도 고기잡이로 바쁘고 살벌한 배의 갑판을 작업실 삼아 그림을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청도’라고만 알려진 선원 출신 작가,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서울 정릉의 반지하에 작은 살림집 겸 작업실을 두고 있는 염성순,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는 것조차 심히 부끄러워하며 청주의 한 초등학교 빈 교실을 작업실로 쓰는 김명숙 등 외로움 속에서 예술을 꽃피워가는 작가들의 창작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예술가로서의 이들의 삶이 주는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벽을 하나 깨기 위해, 혹은 그것을 깰 때마다 만들어내는 새로운 가치와 새로운 삶의 방식은 우리의 사고와 삶이 나갈 수 있는 경계를 넓혀준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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